Roma, Italia
roma, italia
11월 초의 어느 일요일,
느즈막하게 일어났다.
요즘 로마 날씨는 요란하다.
이른 아침에는 매섭게 춥고, 점심은 뙤약볕 가득하고, 저녁은 쌀쌀하게 춥다.
딱 어른들이 말하는 ‘감기 걸리기 쉬운 환절기 날씨’이다.
내 몸도 정신없이 추위에 떨었다가 더위에 시달리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연일 이른 아침에는 도통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침 알람을 꺼두고 몸의 회복 과정에 최대한 내던져두는 수면을 택하고 있다.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 때에 일어났음에도 영 상태가 헬렐레하다.
대충 세수를 하고 느즈막히 집앞 바(Bar; 이탈리아식 카페 개념)에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나갔다.
‘개개인 각자가 다르게 해석한’ 오늘의 날씨에 맞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집앞 대로에 가득하다.
어떤 사람은 얇은 패딩에 롱부츠를, 어떤 사람은 나시에 샌달패션이다.
나는 반팔 위에 스웨터를 겹쳐 입었는데, 스웨터 부분은 약간 더웠고,목은 추웠다(?).
카푸치노를 마셔도 영 심드렁한 기분이다. 살구잼이 들어간 코르네또(Cornetto; 이탈리아 스타일 크루아상)를 먹었는데도 배가 차지가 않는다.
흠 역시 환절기가 왔구나.
늦게 아침을 먹어서, 아침식사를 끝날 때가 되니 이미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대충 가방을 둘러매고, 스쿠터를 타고 가까운 남편과 유명 식료품점인 이탈리(Eataly)로 향했다.
매일 우리 베스파(Vespa)스쿠터가 검정색인 것을 투정부리며,
”로마에서는 쨍한 빨간색 베스파를 타야되!”라고 우겼던 것이 어색할 정도로, 오늘 날씨는 블랙 베스파와 함께 어우러져 녹아내리는 듯하다.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길은 커다란 로마의 소나무 그늘에 가려져서 쌀쌀하다.
(오죽 옛날부터 대단했으면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Respighi)‘가 로마의 소나무(Pini di Roma)’라는 곡을 작곡했을까!)
근데 이탈리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내리니, 뙤약볕에 정수리가 뜨겁다. (정말 날씨 뭐야?) 여튼 간에 날씨 탓이라도 배가 고프니 점심식사를 하러 재빨리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서 들어갔다.
때마침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식료품점에 오는 이탈리아 주부들의 쇼핑피크타임이었을까. 사방에 시식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빵,빠네또네(Panettone)부터 새로나온 채식주의자 마요네즈까지 다양했는데 그 중에서 베이커리 코너에 눈이 갔다.
쟁반 위에 엉기설기 투박하게 잘라놓은 호박설기 같이 생긴 것에 궁금해졌다.
“Vai vai!(먹어봐)”라고 남편이 그 커다랗고 네모난 먹을 것이 내 손을 옮겨다 주었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슴슴한 떡을 좋아하는 나에게 울컥하는 호호불어먹던 호박설기를 떠오르게 하는 무언가의 맛이었다.
입에 넣고 코로 킁킁 냄새를 맡으면 비슷한 발효 밀가루 맛이 올라왔다.
황홀한 맛!
금새 먹고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또 먹어보았다.
계속 놀란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연속이고 그 큰 덩이를 자꾸 입에 넣었다.
그리운 맛과 무언가 이탈리아 할머니의 투박한 사랑이 뭉탱이로 함께 던져진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멋부리지 않은 맛, 심심한 맛에 먹는 덩어리인 것.
남편은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을 보고 직원에게 물어보고 알려주었다.
“사과 타르트(Torta di mele)래”
음? 나는 파리에 있을때도 타르트타탕(Tarte tatin:프랑스식 사과타르트)도 안 좋아했는데?
그리고 이 타르트는 사과 맛이 강하게 나지 않았다. 보통 사과 디저트는 사과를 뭉건하게 설탕에 졸여서 사용하고 시나몬향이 강해서 쨍한맛을 안좋아하는 나는 즐겨먹지 않았다.
근데 이 타르트는 달랐다.
역시 이탈리아 디저트이다.
프랑스랑 다르게 폼을 잡지 않는 투박함이 느껴진다.
어찌나 대충 만들었는지 파는 케이크의 모양이 아주 제각각이고 끝 모양이 조금 그을린 것도 있다. 자세히 보니 진짜 사과 조각도 안에 보인다. 맛을 보았는데 그냥 정말 사과 맛이다.
역시 향에 과대한 멋을 더하지 않은 투박함이다.
남편은 옆에서 나의 해석에 거들었다.
항상 이탈리아 음식 먹을때 감탄하는 내 옆에서 왜 놀라냐며 당연한 듯이 거들며 나에게 하는 말.
“이건 그냥 우리 할머니가 해주던 이탈리아 논나스타일(Nonna;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한다) 음식이야.”
뭘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가지고 놀라니?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
이 나라의 손자 손녀들은 매우 행복하겠다.
이탈리아 음식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남편은 우리가 파리에서 썸을 탈 적에, 싱싱한 석화를 직접 열어서 최고의 와인과 함께 주던 그날을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그에게 관심이 가던 시작은 그가 요리을 시작하게 되고 처음으로 배우게 된 것이 그의 외할머니 덕이였다는 것. 그래서 항상 할머니 레서피에 익숙해진 그의 논나스타일 퀴진(cusine: 요리법)이 우리의 관계에 한 몫을 했다는걸 왜 몰라? 역시 남자야 쯧쯧)
우리나라 백반처럼 별다른 폼을 재지않고 그냥 손만 봐도 맛있는 음식을 할 것 같은 그 큰 할머니 손으로 대충 치대고 더해서 만들어지는 음식.
이 초가을의 힐링은 이거구나!
혼자서 자꾸만 속으로 이탈리아 할머니들을 찬양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정신을 잃었다가 때마침 이리저리 안보이는 남편을 찾았다. 내눈이 마주치니 이미 웃으며 구석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사과타르트를 골라서 와준다. 조금씩 다르게 생긴 사과타르트는 서로 그 다름에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다양한 대량생산 식품에 손맛이 그리울 때 이런 이탈리아의 정겨운 모습은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웃음을 선물해준다. 안에 들어간 사과 조각도 제각기 맘대로이고 아마 저 옆에 조금 못생긴 사과타르트가 사과 조각은 더 예쁘게 잘 배열되서 구워졌을 수도 있을 것. 빵이 빵이면 그만이지 나는 완벽한 비율로 완성된 맛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완벽한 모양을 갖춘 것을 오늘(?) 원하는 것이 아닌 것.
(참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구나.
최고의 밸런스를 갖춘 프랑스 에끌레어를 파리 마레지구에서 베어물고
연시코 놀란눈으로 남편이된 남친을 바라보았던게..
4년전인가?
여기와서 취향도 사람도 바뀌었다.
이제 나는 한정식보다는 백반이다)
그냥 이런 다양하고 다른 가능성들이 삐뚤빼둘 귀엽게 배열된 이 빵집의 공간의 존재가 아름답다.
이상한 날씨에 무거웠던 온몸이 따뜻함으로 깨어나는 기분.
집에 가서 함께 먹을 우유를 사러 가야겠다.
따뜻한 우유와 타르트를 식탁에 펼쳐놓고 계속이고 먹어야지. 한움큼씩 먹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