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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고양이 Nov 08. 2019

로마의 특별한 아침식사

Roma, Italia

Roma, Italia


알람소리가 아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떠서 맞는 새로운 아침.


외국인이 살아가기에,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는 로마의 날들은 아니더라도 이런 작은 아침의 여유로움이 기분을 충만하게 해준다. 곧이어 침대에서 돌아앉아서 암막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니 햇빛이 침대에 쏟아진다.


일어나서 창문까지 걸어가 암막을 걷는 것이 길고 멀게만 느껴져서 침대에서 우쭐거렸던 시간들을 후회스럽게 만드는 따뜻하게 반겨주는 햇빛이 비쳐온다. 창문을 열고 위에 하얀 얇은 천의 레이스 커튼을 남겨뒀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한참동안 소파에 앉아서 바라보았다.


햇빛이 반겨주는 우리집 한켠의 정경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서 강해졌다 사라졌다 하는 햇빛, 그리고 살랑이는 레이스 커튼과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이탈리아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오늘을 거뜬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큼 생기를 불어주는 고마운 아침을 만들어주었다.


세수를 하고 수분케어를 하고 음악을 따로 틀지 않아도 정겨운 이웃들의 아침을 시작하는 소리를 창문으로 들으니 저절로 쾌활한 기분이 든다.


남편과 함께 집골목 초 입구에 있는 바(Bar)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곳이다. 회사에 일 나가는 사람들, 아이 엄마들, 노부부들 모두가 하루를 시작하고 혹은 젊은이들은 시원한 와인으로 하루를 정리하기도 하는 그런 곳.


동네 바의 모습. 가운데가 크레일리아, 오른쪽이 조반니

우리 부부는 주로 아침10시반에서 11시에 바에 들린다. 걸어가는 가는 가게의 유리창문 너머로 이미 매일 만나는 우리의 이웃들이 보인다.

안에서도 우리를 보고 힘차게 손을 흔들어서 아침인사를 해주는 정겨운 나의 이웃들.


우리 아침 식사의 멤버는 때에 따라 가감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1) 나와 남편 그리고 2) 로베르타와 미노 70대 부부, 3) 그리고 조반니(나의 남편과 이름이 같은데 우리 아침 멤버 안에만 해도 조반니가 3명이다)와 클레일리아 90대 부부, 4) 마지막으로 나디아와 난도 60대 부부이다.


처음에 우리 부부가 밀라노에서 로마로 이사를 왔을 때 처음으로 이사를 온 집에 짐을 놓자마자 아침을 먹기 위해서 이 바에 왔었다. 나는 이곳의 피스타치오 크림이 들어간 꼬르네또(Cornetto: 이탈리아식 크라상이라고 상상하면 된다)와 카푸치노를 마시고 그 맛과 가격에 반했다.

꼬르네또와 카푸치노: 전형적인 이탈리아 아침식사, 왼쪽부터 누텔라맛, 블루베리맛, 피스타치오맛 꼬르네또이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밀라노의 가격에 익숙해진 나에게 로마의 커피와 빵 가격은 훨씬 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아름다운 남부의 나폴리를 가고 나서 한번 더 우장창깨지고 마는데! 이탈리아는 남부로 가면 갈수록 물가가 값싸진다.) 그 로마에 온 첫날 남편과 같은 이름을 가진 93세의 조반니 부부를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우리는 로마의 가장 중요한 바 사교 모임에 녹아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바 안에는 이탈리아 인들의 일상, 어쩌면 일생이 모두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새벽 6시부터 장사를 시작하니 그 이전 새벽부터 지하에서 빵을 만드는 제빵사들은 매우 바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갓 만들어진 빵들을 가장 먼저 먹는 사람들은 일찍이 회사에 가는 로마의 회사원 들이다.


시간이 없이 바쁜 사람들은 의자에 앉지 않고 재빠르게 바에 서서 순식간에 먹고 자리를 뜬다. 짧은 시간이지만 신문, 스포츠 신문, 그리고 주로 축구전문 신문을 읽으며 아침식사를 하고 복권을 한개 사서 일터로 나가기 전 이른 퇴직을 꿈꾸며 정성을 다해 긁어본다.

이탈리아 복권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가 로또 이전에 주로 했던 동전으로 긁는 복권의 조상님을 아직까지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특히나 항상 커피와 함께 신문을 보며 열심히 복권을 긁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피식 저절로 웃음이 나곤 한다.


영화 돌체 비타 Dolce Vita, 화려한 밀라노 패션위크, 펜디Fendi, 프라다Prada 등의 명품 브랜드, 그리고 명품 와인의 본고장과 더불은 콧대높은 역사의 이미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은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평범하고 평범하다.

물론 평범할 수 있기에 그 평범함이 특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차례 이런 일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시간대에 바에 오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부부 그리고 여유로운 노부부들 그리고 손주를 대신 봐주는 할머니들이다.


바에 도착하자마자 주문을 하고 이웃들이 이미 만들어준 우리의 테이블에 앉는다. 이 시간이 되도 바는 항상 붐빈다. 시끌벅적 사람들이 만드는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커피 잔이 받침대에 얹어지고 스푼이 얹어지는 소리들, 커피가루를 털어내는 소리, 그리고는 고소한 에스프레소가 내려지는 향이 풍겨온다. 

앉을 겨를도 없이 안부를 묻고 지내 오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간 힘들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으면 진심으로 우리의 걱정을 함께 고민해주고 해결을 하려 노력하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놀랍게도 로마 할머니가 위로해주는 문장은 우리 할머니가 해주었음직한 말과 너무 닮았다. "신이 한쪽 문을 닫아주었으니, 더 큰 다른 문을 열어주실거야!"라고 말씀하고 웃어주신다.


삶의 노련함이 긴 어르신들은 그냥 웃음만 지어도 그 살아온 삶이 저절로 나에게 믿음을 준다. 괜시리 진짜 다 괜찮아 질 것 같고 모든 일들이 바르게만 흐르고 있다고 믿게 되는 웃음.

조반니와 크레일리아의 결혼식 사진


조반니 할아버지는 이번 여름 편찮으셨다. 하루만 바에 두 노부부가 나오시지 않으면 겁이 났다.

회복하고 여전히 두 분이 천천히 걸어서 이곳 바에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도감이 든다.


오늘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우리는 같이 하늘에 가야돼. 당신 없으면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요." 라고 말씀하시고 두 분의 결혼식 흑백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계속해서 최고 미남, 미녀였다고 주장해오셔서 젊으실 적 사진을 항상 보고싶었는데 드디어 사진을 챙겨 오신 것이었다. 1952년 12월 7일의 애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결혼식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할머니 아버지의 출장에 따라서 로마에 들렸었고, 바로 바에서 미래의 남편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한눈에 반하고 할머니는 다시 로마 근교의 마을로 돌아갔다. 가끔 만나서 데이트를 했지만 할머니는 지역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의 유일한 딸이었고, 할아버지는 평범한 로마 사람이었던 것. 가족들은 만남을 반대했고 급기야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테베레 강에 뛰어들겠다고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할머니를 외딴 산에 있는 수녀학교에도 보냈으나 수녀 선생님은 오히려 가족들을 설득하게 되었고 두 분은 이런 어려움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 나이 16살 그리고 할아버지가 21살 때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집의 창문에서 만들어 부르던 아름다운 시의 구절도 할머니는 그대로 기억하고 우리에게 읊어주었다.

어차피 지나가야할 어려운 길이라면 여유롭게 웃으며 가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삶을 살아갈수록 조금씩 내 삶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관망하게 되고 그럴수록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너무 가까이 내 손에 잡히는 흑백 사진은 그들이 거의 60년을 함께 하는 출발의 날이었던 것. 그리고 그 가장 최근의 모습을 내 눈앞에서 두분을 보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들의 인생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매우 묘한 기분이 든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매우 길면서도 이렇게만 보면 너무나 짧게 느껴지고. 가끔씩 들려주는 힘드셨던 이야기들 행복했던 이야기들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그들 인생을 가득차고 있겠지.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어디 즈음에 있지?


 머리 아프게 생각했던, 큰 고민거리들이 그냥 작은 조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차피 지나갈 한 순간으로 여겨진다. 어차피 지나가야할 어려운 강이라면 여유롭게 웃으며 가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차피 건널 것이라면 찌푸리나, 걱정하나, 웃으나 매한가지로 건너기만 하면 마는 것. 서로 부부들이 처음 만난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오며 어느새 내 안의 어려움은 다 위로 받은 것 같았다.


그냥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어차피 살아갈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웃고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도 도란도란하며 의연하게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진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젊었지만, 그리고 모두이들은 자신의 젊음이 더욱 아름다웠다고 하지만 현재 내 앞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름 가득한 웃는 얼굴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여유로운 따뜻한 얼굴에서 그들이 좋은 삶을 만들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나는 바에서 희희덕 거리며 그들에게 우리 부부의 고민을 털어 놓았고, 위로받았고, 치유 받았다. 놀랍게도 웅성웅성 왁자지껄한 집 앞의 바가 마법의 '치유의 공간'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이야기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남편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내가 신이 아니니 모든 걸 예견할 수도 없고, 좋은 길만이 올 것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냥 천천히 너와 함께 조금이라도 마주보고 웃어 봐야겠다.


돌아오니 아침에 일어났던 내방의 레이스 커튼은 여전히 바람에 맞춰서 흔들리고 있었다. 여유롭게 바람에 산들산들 휘어졌다가 펴지는 하얀 레이스 커튼 안에 이미 모든 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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