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나나고양이 Nov 08. 2019

작고 귀여운 행복이 있는 나의 로마

Roma, Italia

Roma, Italia 


별다른 특별하지 않은 날에 남편을 일터로 보내고 책을 읽는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매일의 골목을 돌다가 보이는 오랜 로마의 유적에 궁금증이 생겨서 요즘 계속 읽고 있는 책은 로마시대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것이다. 

빨간색 길쭉한 소파에 몸을 ('남이 보면 매우 불편해 보일 자세로') 대충 눕는다. 

새로운 우리 일상이 시작되는 도시, 로마


낮이라도 창의 암막을 반쯤 내리고 노랗고 따뜻한 색의 램프를 켜 놓는다. 그로 인해서 공간이 더욱 아늑한 곳이 되는 느낌이다. 세간의 유행을 따른 것이 아닌 나만의 관심으로 이끌린 책을 읽을 때면 그 몰입도가 배가 된다. 오늘 오후는 로마제국의 제빵사와 요리사의 평범한 하루에 대해서 읽을 차례이다. 


책 안의 오래전 로마 사람들과 나, 같은 로마라는 도시에 2000년 시간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배우게 된 야매 이탈리아어로 책 속의 조금의 라틴어가 읽히고, 옛 로마 지역들에 현재의 로마가 오버랩 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금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반대 소파 팔꿈치 쪽으로 몸을 바꿔 누었다. (별다른 의도는 없지만 근육이 저려서..). 



더운 여름날,이탈리아 사람들은 해가 떠있을 때는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하기를 싫어한다. 따뜻한 음식이 역시 여름에는 땡기지 않나 보다. 요즘 나는 남편에게 배운 여름철 이탈리아인들의 식단을 여러 번 우려먹는 중이다.

(사실 이 이외의 것을 내가 차려 먹은 기억이 한참 전인 것 같다.)


먼저 남편이 차렸던 점심 그릇들을 씻는다.

(남편은 내가 만드는 요리보다 그릇이 훨씬 많이 쓰이는 요리를 주로 한다.) 

쇼파에 누운 나를 닮은 티볼리(Tivoli)에서 만난 조각상


그리고,

 1) 방울토마토를 씻어서 썰고, 작은 채소들을 엉기성기 그릇에 던져 넣는다. 


2) 이미 잘린 파르메자노 치즈(Parmigiano Reggiano Cheese)를 두 조각 넣고, 새로 프로슈토 크루도(Prosciutto Crudo:이탈리아 파르마 지역 생햄의 종류)를 열어서 찢어서 손으로 말아서 그릇에 올린다. 

이렇게 이탈리아식 식사가 2분에 완성되었다. 


3) 이제는 식탁으로 그릇을 옮겨서 토마토에 건 마늘 가루를 뿌리고, 후추, 소금 간을 하고 올리브유를 뿌려준다. 올리브유를 듬뿍 채소에도 뿌린다. 질이 좋은 올리브유(사실 안 좋은 올리브유 찾기가 더 힘들다.)의 향을 입히면 채소투정 부리던 나도 우걱우걱 잘 먹는다. 


그리씨니(Grissini: 막대기 모양의 이탈리아 빵)를 4개정도 찻장에서 내오면 완성. 항상 두개는 더 먹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부터 여섯 개를 꺼내지는 않는다. 괜히 나중에 꺼내먹으면 먹은 개수로 카운팅 안 될 것 같고, 이상하게시리 그냥 정량을 먹는 기분보다 더 먹었다는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게 더 마음에 든다.


이날 요리한 신선한 재철 재료들이 어울어진 나의 점심 / 오늘 장보다가 발견한 싱그러운 제철 채소


그리씨니를 오독 베어물고, 크루도를 감싸서 다시 베어 물었다. 그 맛을 입에 머금은 채로 바로 치즈를 한입 베어 문다. 입안에서 그윽한 조합이 이루어질 때, 향긋함이 묻은 토마토로 맛의 밸런스를 잡는다. 그리고 후렴구로 채소를 입에 넣어주면 정말 맛의 향연이 이런 것일까. 채소가 연해서, 먹어도 계속 들어간다. 탄산수를 입에 살짝 머금으면 그리씨니가 부드러워지면서 맛이 더욱 어우러진다.


얼굴을 들어서 앞을 쳐다보니,창문의 낮아진 로마의 햇빛이 그릇에 들어온다. 대충 만든 요리가 햇빛에 너무 아름답다. 우연히 올리브유가 묻은 루꼴라 잎(Arugula: 채소의 종류)이 토마토 위에 묻었다. 올리브유의 빛깔과 함께 싱싱해 싱싱해 소리가 들리는 토마토의 위에 올라간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나는 우연치 않은 순간에 이렇게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움에 항상 감탄한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지루함에 대충 선들을 마구 교과서 한 칸에 그렸었다. 그러다가 대충 그린 선이, 자를 대고 그린 직선으로보다 아름다운 도형을 만들 때가 있다. 이미 완벽한 도형에서는 이런 감탄을 느끼지 못하는데, 우연함에 마주하게 된 그 도형의 모서리에서는 정말 황홀함을 느낀다. 이게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우연한 그릇 위의 예술을 집어삼키고 예쁜 와인 잔에 체리 요거트를 후식으로 털어 넣었다. 충만하고 만족스럽고 감탄스러운 오후였다. 


이탈리아 농부의 손길을 올리브나무를 보며 느끼고 있는 남편 ( 자연과 함께라면 기필코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것 )


매일의 아름다운 햇빛, 그리고 싱싱함을 노래하는 야채, 과일들에 하루가 충만해진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탈리아 이민의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생겨온다. 돌아가서 잠시 책을 마저 읽다가 슬슬 이동해야겠다. 그나저나 이탈리아 농부님들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