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다 끝내는 확실해지니까
그저 넘겼다 싶었던 일들이 꽤나 오래 남아있는 순간이 있다.
상처든 환희든 무엇으로라도 자리 잡았음을 무심코 깨닫는 것들.
짧게나마 글을 적는 습관을 갖게 되면서 부쩍 느끼는 건,
여기든 저기든 내 맘대로 '그냥' 생각나 적어 본 이야기들을 놓아두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반대로 애써 묻어두고 잊자 잊자 하며 모른 척 외면했던 것들이
생생하게 끄집어내어 지며 이건 분명 내게 몹시 바람직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결과물이야 어떻든 써 내려가는 행위, 그에 따른 과정이 중요한 모양이다.
그 기억이 기쁨이었다면 명확해져 나를 좀 더 버티게 하고
상처였더라면 나름의 해소가 되고 있다는 걸 알아서.
글을 통해 비워 스스로 마련한 자리엔, 지금의 나를 다시 꺼내어 둘 여유 공간이 생긴다.
비워내고 나면 좋았던 일은 선명해지고.
지금의 내겐 상처될 리 없는, 별것 아닌 것에도 종종 댔던 과거의 내겐 늦은 구원이 온다.
마치 생각나는 것들을 그냥저냥 쭉 적어둘 뿐임에도 정성스러운 선물을 받은 기분도 들고.
이내 막연하다가, 끝내는 확실해진다.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