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못하도록
여름이 정말로 저물었을 무렵 곧 많이 추워지겠지? 싶었다.
겨울을 좋아하는 내가 당시 한껏 기대하며 꺼내둔 패딩은 작년과는 다른 기온 이상으로 생각보다 입는 시기가 늦어지기만 했고 현재는, 구석에 처박혀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어제오늘의 바람은 내가 기억하는 겨울의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차가움이었다.
본격적으로 추워질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퇴근 후 집에서 빈둥대는 시간을 보내다 이내 떠오른 패딩.
서둘러 런드리고 앱을 켜서 수거 신청을 했다.
난 엄마가 준 통돌이 세탁기를 거의 10년째 사용 중이고, 이 작은 통돌이로는 겨울 이불 세탁이나 아우터류는 불가능하기에 주로 런드리 고를 이용한다. 조금 비싼 감도 있는데, 예전에 집 근처 세탁소에서 수선이랑 드라이 맡겼다가 낭패를 본 트라우마로 그때부턴 런드리 고를 이용 중.
세탁물을 하나씩 쇼핑백에 담아서, '개별 클리닝'이라고 적고 앱으로 수거 신청을 하면 밤에 기사님이 수거해 가신다. 아-주우,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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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쯤, 샤워를 하고 잠시 빈둥대며 소파에 앉아있는 사이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세탁물을 수거하였습니다.'
수거해 갔다는 메시지일 뿐인데, 느닷없이 나 모르게 침울해져 가라앉았던 마음이 환기되는 것 같았다.
정말 내 무거운 무언가를 '수거'해가 주었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잠시간 살랑대는 기분이 깜빡 짧게 켜졌다. 뭐, 금세 사라졌지만.
이렇듯 하루하루 내게 쌓여가는 불안함, 게으름, 씻어내기 어려운 미움 같은 것들은 넘쳐나는 데.
밖에 내놓았던 세탁물처럼 좋지 못한 감정들도 어딘가에 담아두면 누군가 수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속에 있는 거뭇한 이것들을 끝끝내 팔을 휘저어 몽땅 끄집어낼 수만 있다면, 꽁꽁 싸매서는 집 앞에 조용히 내어두고.
늦은 밤 누군가가 수거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주었으면. 그것들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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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해 간 내 옷은 모두 말끔한 상태로 커버에 쌓여 새 옷처럼 돌아올 것이다.
옷은 새것처럼 바뀌어 와도,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은 돌이킬 수 없다.
괜찮은 척 다시, 반복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또 일상을 잘 지낼 것이다. 여러 번 상처 입어 덮어씌워진 마음은 이제 어른이라 제법 아닌 척도 잘해서, 매우 괜찮은 척 잘 지낼 것이기 때문에.
그러다 결국은, 그래. 누군가가 수거해 줄리 없지.
상처를 지나온 모든 순간, 거짓으로라도 해보는 꿋꿋함이 언젠가의 나를 반드시 일으켜 세우니까.
아, 셀프 수거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