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아버님이 몸보신을 위해 한약을 사주셨습니다.
받는 건 언제나 어색했고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모호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괜히 눈치를 한번 쓱 보고서는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황급히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기도 했습니다.
이미 한약은 모두 먹고 몸에 흡수가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한약 덕분인지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아버님께 감사의 말을 전해봅니다.
한약을 떠올리면 잠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던 어린 시절 한약을 지으러 가자는 엄마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집 앞 한의원에 갔습니다.
특별하게 아픈 것은 아니었고 몸보신을 위해 보약을 먹어야 한다는 그 시절 엄마 생각에 반항하지 못하고 한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약을 짓기 위해 한의사 선생님의 간단한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몸이 허하다고 느끼나요?"
"아니요."
"땀이 많이 나나요?"
"네."
숫기도 없고 별로 타인과 대화하고 싶지 않던 사춘기 소년은 여러 질문들에 시큰둥하게 대답했습니다.
"평소 식탐이 많은 편인가요?"
한약을 짓는 당사자보다 더 빠르게 엄마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별로 먹지도 않아요."
저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음식이 없어서 못 먹었을 뿐이지 한창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혈기 왕성한 남학생인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아니요! 식탐 엄청 많아요!"
저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흘러갈까 봐 재빨리 말을 가로채보았지만 도리어 네가 식탐이 어디 있냐는 엄마의 핀잔만 돌아왔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만큼은 엄마가 저를 단단히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엄마에게 내가 무슨 식탐이 없냐면서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을 뿐 있는 음식 모두 다 먹을 수 있다며 나 식탐 많다고 짜증을 부렸습니다.
제 말이 엄마에게 닿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나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앞으로는 내가 나를 챙겨야 한다.'
한약 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를 더 챙기게 되며 혼자 해결하려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또 한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젠 한약은 쓴맛보다 건강한 맛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오히려 없어서 못 먹는 약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지어준 소중한 한약을 먹으며 더욱 건강해져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