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살아서
데생하듯 말로써 아이슬란드 여행을 그려보겠답시고 희다 곱다 가파르다 하고 있는 내 언어는 빈곤하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표현은 경직되고 메말라서 찍어둔 사진과 영상 속 풍경이 내게 침묵을 강요한다.
가진 바 글재주와 표현력이 부족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책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 선생님이 말하길 (사진 속에 풍경과 시간을 담으려 애쓰는 지인 강운구를 보며) ‘영원성을 잡기 위한 카메라는 안쓰럽고, 언어 또한 그와 같아서 가을의 태백산맥이 입을 열어서 말을 주절거리려는 인간을 향하여 입 닥쳐라 입 닥쳐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사진과 글로 지분덕 거리며 찰나와 영원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그저 존재하는 자연을 넘어설 수 없는 것만 느낀다.
그래도 계속 보고 더듬어 쓴다.
나의 고집은 때때로 굳건해서 기억과 사진을 끝없이 더듬어 살피는데 이번 고집은 어딘가 절박한 구석이 있어 애잔하다.
엄마의 망막에 물이 차서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시신경에도 위험이 미처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을 광주의 안과병원에서 들은 뒤, 부랴부랴 예약한 서울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물을 제거했지만 망막의 훼손된 부분은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 글이 간신히 아이슬란드의 일부라도 잡을 수 있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쉬이 보지 못하는 엄마의 눈에게 언어의 풍경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할 뿐만 아니라 붙잡아 다른 이에게 건네주려 함이다.
이따금 여행과 이국을 다룬 책을 볼 때면 단 몇 줄의 글귀에서도 특정 장소를 상상할 수 있었고 때로는 내가 그곳에 다녀온 것으로 착각할 만큼 선명한 인상을 받았다.
그림과 달리 글은 그 무엇 하나 실제와 동일한 형태를 머리에 그리기 힘들지만 앞선 글에서 말한 것처럼 상상이란 때론 현실보다 대단해서 저마다 구체적이고 또렷하다.
끝내 우리가 남은 시간 동안 이러한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하더라도 언어는 살아서 마음에 풍경을 그려줄 테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북반구 상단 북극과 인접한 위치가 주는 기후적 특성과 피오르드, 지각 판의 경계, 화산지대, 장엄한 폭포, 나무 없이 벌거벗은 땅의 적나라한 형태가 지평선을 이루며 뻗은 그 모든 것이 이 땅에 있어 경이와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단지 지형을 언어로 풀어내는 노력은 한강 물이 흐르는 것과 북한산이 높게 서있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ㄱㄴ아야어여 국어의 자음과 모음에 불과하다.
그곳을 여행한 내 이야기가 포개져야 비로소 온전히 의미 있는 하나의 문장이 될 것이다.
밤사이 새하얗게 변한 세상은 고요했다.
작은 눈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어쩌면 정지한 것처럼 내렸다.
새로운 날의 여행을 시작한 차 안도 고요하고 차분했다.
눈 덮인 미바튼 호수를 빙 둘러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도 그랬다.
오로라가 드리운 밤이 지나고 일행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 여행이 만족 돼버린 듯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약간의 공허한 감정과 비슷했다.
남한 면적과 비슷한 아이슬란드의 서쪽과 북쪽 일부를 봤을 뿐인데도 그랬다.
하늘이 초록으로 물든 밤이 한번 있었을 뿐이다.
눈 구름이 걷혀 하늘이 푸르고 맑을 무렵, 흐베리르 '끓는 땅'에 도착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물론이고 진흙이 돼버린 흙마저 끓는 화산지대 곳곳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유황 냄새가 연기만큼 자욱했다.
지대를 덮은 황토 속에서도 용암이 끓여냈을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땅 자체가 잘 구워진 도자기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이용해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즐겼고, 옆으로 길게 뿜어지는 연기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서있는 곳이 마치 잡지 화보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 속이었기 때문에 몇몇은 멋진 포즈를 취하며 모델 화보 촬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실제 모든 사진이 화보 같았고, 이 모든 풍경이 새파란 하늘 아래 있어 사람이 무엇을 하건 전체의 일부로 아름다웠다.
박동하며 하늘 위로 물줄기를 쏘아 올리던 게이시르와 더불어 이곳 흐베리르에서 지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다.
가히 뜨거운 심장을 가진 행성이다.
흐베리르를 지나 산을 넘는 길에 지열 발전소가 있었고, 어느샌가 올라온 높은 산등성이에서부턴 세상이 희거나 푸르름으로 양분됐다.
어디를 둘러보나 그랬다.
끓는 땅을 지나왔더니 어느새 설산 위에 올라온 것이다.
산 위로 하늘은 여전히 푸르러 맑았고 사방의 눈 덮인 곳엔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었다.
나무나 암석의 거친 지형이 없기 때문에 그저 눈뿐이었고, 새하얀 설원 속에 우리가 아주 작은 존재로써 파묻혀 나 역시 깨끗하고 순수해지는 것 같았다.
크라플라 산 정상 분화구엔 물이 고여 얼어붙었고, 이 푸른 화구를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몇몇 여행자들이 분화구를 향해 먼 걸음을 하는 동안 나의 일행들은 이 새하얀 공간 위에 서서 드론을 날려 우리란 존재를 찍고 싶어 했다.
바람이 불어 불안정한 비행으로 올라가는 드론의 눈에 우리는 하얀 설원 위의 티끌 같다가 이내 높은 고도에서 풍경의 하나로 스며들었다.
우리가 순수하다 예쁘다 티끌 없다 하는 곳은 불과 300년 전까지 스무 번이 넘게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흐르고 땅이 그을렸다.
모든 것이 겨울의 눈 아래 감추었다.
하늘이 흐려 곧 비나 눈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가 됐을 땐 데티포스에 도착했다.
영혼이 녹아있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잿빛으로 어두운 강물이 그 끝에서 완전히 생을 마감하고 곧장 떨어져 내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듯 부서지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폭포라는 정보를 보지 않았더래도 눈앞의 폭포는 그러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그 넓은 강으로부터 낙하하는데 유량이 초당 50만 리터다.
폭포의 끝은 감히 내려다볼 수 없었고 부서지고 튀어 오르는 물방울과 포말로 인해 보이지도 않았다.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리운 먹구름뿐만 아니라 협곡의 바위와 강 옆의 크고 작은 돌, 강물까지 모든 것이 회색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굴포스부터 고다 포스, 데티포스까지 각기 다른 형태로 폭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은 떨어져 내리는 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형이 만드는 전체적인 모습이 제각각으로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협곡에서 흘러온 잿빛 강물이 100m 강폭의 넓은 하류에서 회색 돌멩이들과 수면의 높이를 같이 하다가 일제히 45m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이후 그 폭포의 높이만큼 협곡이 이어진다.
SF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촬영지란 정보를 봤기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UFO가 상공에 머물러 무언가를 내려보낼 듯했다.
우리가 있는 위치 건너편에서 주변 지형과 폭포를 담은 앵글이 영화의 장면이다.
폭포와 강 바로 옆까지 다가가서 폭포를 즐기고 사진을 찍고 물을 직접 만져보기 좋은 위치는 저곳이지만 폭포로 오던 갈림길에서 적어온 국도 정보와 무관하게 길을 꺾어 들어온 탓에 우리는 반대편에서 그곳을 본다.
아쉽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움직임의 반경이 크고 지난한 일이며 어느 쪽에서든 못 본 것이 아쉽기 때문에 이 자체로 만족했다.
강 상류로 걸어가면 강물이 협곡 사이를 흘러오는 것과 셀포스라는 폭포를 볼 수 있다기에 걸어가 보다가 이내 일행들의 피로도를 감안하여 몸을 돌렸다.
하루의 풍경이 이전처럼 이색적이고 신비로웠으나 왠지 차분하게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끓는 땅과 설산, 잿빛의 폭포까지 기이함으로 가득한데도 일행들의 여행에 이전과 같은 뜨거움이 없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불타오를 것은 없지만 내일을 기대하고 오늘을 즐거워하며 함께 여행하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어쩌면 전체적인 일정을 내가 설계하고 있기 때문에 일행들보다 조금 더 여행에 집중하고 몰입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난밤 마음에 드리운 오로라의 장막이 아직 걷히지 않았거나.
이젠 오로라에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고 오로라를 당연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나만이 지속해서 다음을 궁금해하고 여행 계획을 점검한다.
함께 설계하고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여행을 꾸려간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모두 계획에서 한발 떨어져 있고 나는 한 발 나서 있다.
하루에 본 것들 중 데티포스는 대단했다.
화산재가 섞여 잿빛으로 탁한 물이 흘러와 그대로 떨어지는데 세상의 끝을 보는 것 같았다.
데티포스를 뒤로 하고 800번대 도로를 벗어나 다시 1번 링로드 위에 안착했을 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다.
눈처럼 차분히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마치 오늘 여정을 시작할 때와 흡사했고 일행들의 말소리마저 잦아들며 와이퍼의 움직임이 만드는 소리만 들려왔다.
캄캄해진 도로에 새하얀 눈이 흩날리는 것은 대단히 몽환적이었으나 와이퍼가 바삐 움직이면서부터 차 내부에 긴장과 적막이 흘렀다.
고요함에도 팽팽함과 느슨함이 있었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도로에 하이빔을 쏘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차 안의 기류가 기민하게 다가왔다.
느슨했던 일행들의 호흡마저 가쁘거나 멈춘 듯했다.
며칠 전 눈 덮인 도로를 위태롭게 전진하다 돌아선 기억을 저마다 떠올렸을 것이다.
긴장을 풀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옆에 앉은 맏형이 경직된 웃음과 반응을 하는 동안 바퀴가 불규칙적인 곳을 밟으며 핸들이 틀어지고 바퀴가 헛돌아 잠겼지만 어느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전진했다.
어찌 됐건 이번엔 '앞으로 가는 것' 그 수밖에 없었다.
핸들을 붙잡은 두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큰 차가 앞에 있으면 눈보라와 더불어 바닥에서 훑어 올린 눈마저 날려와 앞이 보이지 않기 일쑤였고 주변에 차량이 없을 땐 헤드라이트를 위로 들어 하이빔을 쏘며 도로를 구분했다.
다행히 1번 도로에 올라와있기 때문에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차들이 있었고, 긴급 제설 차량이 눈을 한쪽으로 밀기 위해 천천히 도로에 진입하고 있다는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날 경험을 통해 정보의 필요성을 깨닫고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과 복구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아뒀던 것이다.
세이디스피외르뒤르까지 가서 숙박하려던 일정을 변경해서 그 직전의 도시 에이일스타디르에 숙소를 잡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함박눈과 두텁게 덮인 눈을 헤치며 지나온 길 끝에 에이일스타디르에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저마다 말이 많아진다.
숙소로 가는 길에 본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맏형이 오늘은 외식을 하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많은 것을 억눌러왔다가 뱉은 듯한 그 말에 일행들은 단숨에 순응했다.
긴장에 마음 졸이기도 했고, 저녁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도 했다.
그때쯤, 하나의 순간을 맞이하면 그것을 충분히 가슴에 받아들이며 음미하길 원하는 내 여행 방법과 장소를 확인하고 인증 사진을 찍으면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는 둘째의 여행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게 충돌하고 있었고, 대부분 사진을 담당해서 찍어주고 있는 맏형이 소진되고 있었다.
데티포스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니 직후 곧장 차로 돌아가버리는 둘째의 등 뒤로 한숨과 함께 뱉어낸 맏형의 중얼거림에 예민함이 묻어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번 풀어내고 털어낼 때가 됐다.
숙소에 짐을 두고 걸어서 식당을 찾아가는 동안 작은 눈송이가 몹시 아름답게 하늘하늘 내려왔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눈송이는 그 작고 여린 형태를 선명하게 보였고 나와 일행들은 하늘을 보며 두 팔 벌려 빙빙 돌아 그 순간의 행복을 누렸다.
곳곳에 수북이 쌓인 눈 위로 풀쩍 뛰어 대자로 드러눕기도 했는데 이런 겨울의 즐거움을 티끌 없이 맛본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인구가 많지 않은 도시의 밤엔 영업 중인 식당이 한정적이어서 큰 선택권이 없었다.
바비큐를 파는 식당의 넓은 홀에 우리만이 앉아 재잘대며 스테이크와 피자 감자튀김 등을 시켰고, 각자 마실 맥주와 음료를 연달아 주문하며 이 밤에 녹아들었다.
맏형은 이왕이면 2차를 즐기며 외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긴장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누리고 싶었던 것 같지만 식당을 나왔을 땐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식사량이란 너무도 소박해서 크게 충족되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눈이 흩날리는 즐거움을 느끼며 빙빙 돌았다.
뜨거운 숙소에서 남자 넷이 크게 발 벌려 앉아 재잘거리며 술을 따르고 안주를 먹었다.
함께하는 여행이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여행이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별것 아닌 것도 누군가의 감탄에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아름답다 느끼고, 시야와 보폭을 맞추게 된다.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도 여행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의 말로써 명확히 정의하긴 힘든 일이지만 이전까지 해오던 혼자만의 배낭여행과 동행을 구해 함께하는 여행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나에겐 그 대척점이 노르웨이 여행이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두 여행은 계절뿐만이 아니라 여행의 방법에서도 180도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다.
이 글이 다 쓰이면 이전에 쓴 '노르웨이의 문장들'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여행 중 눈으로 어떤 사물과 풍경을 본다는 행위에는 변함이 없고 절대량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럼에도 본다는 것은 여행의 일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