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으로도 즐거워하는
고래라는 생물은 크다는 것에서부터 경이롭다.
바다는 물론이고 육지에서도 움직이는 생명체 중 사람보다 크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발산하는데, 고래는 단순히 크다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것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경이의 대상이었다.
증기와 산업, 과학이 발전한 세상에서 크고 견고하고 위협적인 운송수단을 만들게 됐음에도 여전하다.
어릴 때 고래는 신비한 동물로 움직이는 섬과 같아서 세상을 삼키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큰 고래는 길이가 31m나 된다고 했고, 향고래라는 종은 최대 2시간까지도 잠수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긴 잠수를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오면 공중으로 물을 내뿜으며 호흡하는데 그때 물기둥이 8m 높이까지 솟구친다고 했다.
어릴 때 상상하던 것이 어른이 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고래가 입을 벌리고 헤엄치면 그 경로에 떠있는 모든 것이 다 그 입안으로 들어갈 듯하다.
그래서 고래 투어를 하는 동안에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큰 고래를 볼 수 있길 갈망하고 있다.
짙은 파란색 점프 슈트를 입고 배의 가장 앞부분 갑판대에 팔을 걸친 채 기대어 섰다.
튀어 오르는 바닷물에 젖는 것을 막아주고 찬 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이 옷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활동성이 좋고 그 자체로 폼이 좋아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기 바쁘다.
갑판 뒤로 아이슬란드 바다와 설산의 배경이 더해지면서 진정 북극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
실제 아이슬란드는 북극권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북쪽 달비크에서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북극을 탐험하기 위한 출정과도 같다.
바다는 짙게 푸르러 시린 빛이고 푸른 하늘은 지면에 가까울수록 희게 빛났다.
그런 바다와 하늘 사이에 높고 낮은 산이 섬처럼 저 멀리 떠서 회색의 음영에 흰색 눈을 덮고 수려하다.
이따금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공중으로 물을 뿜었다.
눈에 비친 세상이 경이롭다.
이토록 시리고 깊은 바다에 사는 고래는 압도적인 크기로 인해 바다에서 자유롭다.
고래의 유일한 천적은 사람이고 이 사람의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산다.
고래를 보기 위해 바다를 찾는 것도 사람이 유일하다.
고래뿐만이 아니라 각종 생명체와 자연을 단순히 보기 위해 세상을 헤매는 것은 사람이 유일하다.
보는 것으로도 즐거워하는 내가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달비크에서 본 고래들은 기대보다 작았고 이따금 소박한 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거대한 생명체의 움직임과 공중에 흩뿌려진 물을 보는 것이 기꺼웠다.
투어를 마무리하고 육지를 돌아온 뒤엔 차 열쇠를 분실하여 한차례 소동이 있었고, 돌아온 길과 반납한 슈트를 뒤지는 동안 고래 탐사대 사무실에 조금 더 머물면서 고기를 그릴에 구워 먹는 행운도 있었다.
안쪽까지 잘 익도록 칼집을 낸 뒤 촉촉함을 살려 구운 토실한 생선살에 후추와 레몬즙을 뿌렸다.
별미였다.
달비크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미바튼 호수 쪽에 예약한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슬며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겨울 아이슬란드의 하루는 짧고, 그래서 여행의 밀도가 높다.
빛이 저무는 아름다운 길에서 우리는 많은 음악을 들었다.
Snow patrol의 음악을 들으며 콘서트와 페스티벌 등의 이야기를 했고, Foo fighters, Red Hot Chili Peppers의 록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흔들고 떠들썩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록이란 장르는 감정을 여한 없이 다 토해내는 맛이 있어서 듣는 내내 유쾌하고 개운하다.
일행들은 전날부터 영화 '월터 미티(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저마다 이곳이다 저곳이다 하는 통에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나도 흥미를 갖고 그들이 가리키는 풍경을 봤다.
영화의 내용, 영상미만큼 노래가 좋다는 말에 OST 전체를 연달아 들었는데 음악이란 기묘해서 아이슬란드에 있는 사실이 이미 분명한데도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분명히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어스름한 도로 양 옆으로 눈 덮인 길과 언덕 기묘한 지형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는 저마다 기타와 드럼, 신시사이저를 치고 노래하는 밴드가 되어 흥얼거렸다.
하늘엔 구름이 띠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아 어딘가 밝은 어둠 위에, 기묘하게 선명한 구름의 띠를 보며 '저게 우리가 찾던 오로라 아니야?'라는 말을 장난스레 던졌다.
다 같이 웃으며 그 구름을 올려다보다가 몇 초 후에 정말 오로라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지며 차를 도로 한편에 세우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맞았다.
긴 나선형의 유려한 띠는 해가 저무는 것에 따라 점차 선명해지고 연둣빛 희뿌연 형태가 됐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자연 현상에 손가락 한마디만큼 넋을 놓고 바라봤다.
흥분이 차올랐다.
형태가 더 선명해지기 전에 다음 목적지 미바튼 호수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미바튼은 온천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오로라 관측에 용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희뿌연 채 하늘에 떠있는 오로라는 밤이 될수록, 주변에 빛이 없을수록 신비한 형체를 우리에게 드러낼 것이 분명했기에 우리는 서로 신이 나 방방 뛰며 차에 올라탔다.
차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 동안 노래를 틀어야 했다. Rock, Rock이었다.
도시와 멀고 산등성이가 둘러싸고 있는 미바튼의 호수에 가까워지는 동안 짙고 어두운 밤이 왔고, 오로라는 하나의 띠가 아니라 부채를 펼친 듯 커튼을 내린 듯 하늘을 뒤덮었다.
검은 줄만 알았던 하늘에 흰 구름과 반짝이는 별 말고도 색칠되는 것이 있다.
보는 게 그저 좋아서 우리는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봤고, 정신을 차린 후 앞다퉈 온천으로 들어갔다.
사지의 노곤함이 단박에 풀리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저마다 떠올렸다.
노천 온천에서 몸을 풀며 오로라를 올려다보는 황홀한 순간에 맏형은 요지부동으로 온천에 들어오지 않고 삼각대를 세우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아이슬란드 여행 동안 오로라를 보는 게 유일한 소망이었던 그가 하늘을 가득 뒤덮은 신비를 보고 얼마나 감격에 겨웠을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그가 아름답다 여기는 것을 가장 잘 경험하고 간직하는 방법이 사진이기에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을 수 있길 바랐다.
오로라를 찍기 위해선 노출과 밝기 등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카메라와 핸드폰으로는 원하는 사진을 찍기 힘들다.
DSLR을 손에 들고도 자동모드로만 사진을 찍어온 나로선 왜 하늘의 오로라가 내 사진에 담기지 않는지, 왜 어두운지, 왜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맏형 카메라와 같은 설정값을 맞추고 삼각대를 세우고서야 간신히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은 때때로 눈의 인지를 넘어서는 것이 있어서 보는 것보다 선명한 오로라와 수없이 많은 별들이 사진 속에 담겼다.
3차원의 형태로 하늘에 드려진 장막 같았던 오로라는 짙고 야광에 가까운 초록빛을 띠다가 점차 사라졌다.
일행들 사이에 오로라를 또 보고 싶다는 열망은 커졌고 오로라를 사진에 제대로 담고 싶다는 기이한 열망도 함께 피어났다.
노르웨이, 캐나다, 아이슬란드 등 특정 장소에서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다는 이 현상 아래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다음엔 제대로 남겨보자고 했다.
사람에겐 기록뿐만이 아니라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있나 보다.
미바튼에 예약한 숙소는 다른 여행자들도 함께 이용하는 형태여서 이전처럼 시끄럽게 굴지 못하고 조용히 부엌 탁자에 모여 앉았다.
꽤 오랜 시간 오로라를 본 흥분을 저마다 분출하다가 오로라 지수가 계속 높으니 새벽에도 일어나서 오로라를 볼 거라며 잠들었지만 누구도 일어나지 못했다.
자는 동안 오로라 투어를 나서는 여행자들의 발소리가 어렴풋이 달그락거렸다.
고다 포스(Goðafoss : 폭포) 아래 누운 고래 꿈을 꿨다.
주변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 덮였고, 폭포로부터 사방으로 날아간 물방울은 얼어붙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한 겨울의 세상에서 혼자 흐르고 낙하하는 폭포는 아름다웠다.
폭은 30m로 끝에서 갈라진 강의 폭만큼 넓었고 낙차는 12m로 컸지만, 꿈속에서 31m 흰 긴 수염고래가 누워서 공중으로 물을 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다 포스는 그저 모든 것이 희고 부드러워서 눈이 녹아 푸릇한 날에 와도 그 자태가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 탓일까 꿈은 이내 봄날의 아이슬란드로 바뀌었다.
잠에서 깨고도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달비크의 고래 투어를 가기 전 아침에 들린 고다 폭포는 내 기억 속에만 있다.
맏형은 이때 귀찮다며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고, 빼어난 아름다움을 열심히 담은 내 카메라의 SD카드는 망가졌다.
앵글의 안과 밖으로 더듬은 풍경도 꽤나 깊은 시선이었을까 고운 자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기억으로 더듬는 상상이 때론 현실보다 아름다워서 굳이 사진을 찾아보지 않고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