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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휘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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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Nov 23. 2022

[휘케치북] 22.11.23

추천곡과 더불어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오 사랑아 - 허회경'


오 사랑아 첫마디에 왠지 마음이 무너져서 종일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봅니다. 

허회경의 신곡 <오 사랑아>입니다.

전주 없이 시작되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오 사랑아 조금만 더 버텨주오

라는 이 노래처럼.

담담한 목소리 만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곡이 참 좋습니다.

김현창, 최유리, 신지훈, 정밀아 그들의 노래처럼.


김현창의 <아침만 남겨두고>, <joshua>

최유리의  <이것밖에>, <동그라미>

허회경의 <김철수 씨 이야기>

신지훈의 <가득 빈 마음에>,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정밀아의 <꽃>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모처럼 빗소리가 듣고 싶어서

엉뚱한 시간에 자고 일어났지만 아주 잠깐 스쳐간 후론 비가 오지 않는 밤을 보냅니다.

긴 밤입니다.

어두운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계절이 바뀌며 밤이 길어지는 것이 썩 괜찮습니다.

밤의 글은 낮의 글과 많은 것이 다른데

밤에 깨어 글을 쓸 때면 불현듯 밝아오는 창밖에 조바심이 납니다.

벌써 아침이라니.

낮의 글은 밤에도 이어지는데 밤의 글은 단절되는 것은 왜인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근 일 년여 낮과 밤을 바꿔 지내고 있음에도 나는 낮의 사람인 탓인가 봅니다.


며칠 전 삼청동으로 발걸음 하여 그 고즈넉함 사이를 걷다가 

걷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 경복궁을 넘어 서촌으로 향했습니다.

경복궁 옆에 선 가로수는 6층 빌딩 높이에 가까웠고 그 거대함 마다 단풍잎이 매달려 

풍성한 낭만만큼 그것을 보는 마음도 풍요로웠습니다.

이전에는 경복궁을 거닐 때 어디서든 보이는 근정전의 지붕을 좋아했는데

이번엔 기와지붕 위에 작은 토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칭할 이름을 알지 못해서 검색해보니 '잡상'이라고 합니다. 

잡상이라니 찾지 않아도 될뻔했습니다.

지붕마다 그 끝에 일렬로 선 토우들이 단풍나무와 푸른 하늘 틈에 서서 예뻤습니다.


횡단보도 신호에 발걸음이 멈추니 배가 고프더군요.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들어보니 삼계탕집이 보였습니다.

그래 이곳엔 저 집이 있었지.

문득 추억이 찾아와 발걸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에 받은 실망감에 다시는 안 오겠다고 생각했음에도 

추억을 쫓아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한때는 특별했던 음식점엔 여전히 상술만이 남아서 기대한 맛은 온데간데없었지만

이곳에 함께 왔던 많은 인연들을 생각하고 그때 소중했던 기억들을 반가워하며 음미했습니다.

좋았습니다.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교차점에 통창으로 만든 카페에 들어가서 산미가 있는 원두를 고르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습니다.

삼청동의 발걸음은 멀리까지 향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카페에서 마무리됩니다.

이전에 즐겨 가던 카페는 이제 자리에 없지만 

하나 없어졌을 뿐 수없이 많은 카페가 자리한 탓에 

대체로 시야를 가리지 않고 밖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갑니다.

밖을 보지 않으면 굳이 삼청동까지 온 이유가 없다 여기며.

낮의 시간에 글을 쓰며 이따금 고개를 들면 삼청동의 거리를 볼 수 있었지만

어둠이 내리면서 카페의 유리는 밖을 내보이지 않고 나와 카페 내부를 비추고

그때는 어쩔 수 없어 노트북을 덮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역시 나는 낮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때 허회경의 신곡을 알았더라면 밖을 보지 않고도 무너진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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