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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Jan 10. 2024

동그란 뼈다귀

아들의 신체 탐구는 끝이 없다. 본인의 신체 부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엄마 아빠의 신체 탐구, 그리고 사람들이 취하는 신기한 자세 따라 하기 등 무궁무진한 놀이가 따로 없다. 하루는 남편이 케틀벨 활용 운동법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뒤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넋을 놓고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아들이 며칠 전, 나의 팔을 열심히 만지더니 안에 딱딱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간단히 뼈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자신의 몸에도 뼈가 있는지 열심히 여기저기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체 탐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고추 탐구이다. 남자 형제가 없었던 우리 집에서 남의 고추를 볼 일이 없었거니와 아들을 낳기 전에는 아무리 어린아이의 고추라도 가만히 들여다 보기가 왠지 부끄러워 많은 시간을 들여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는 고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나의 숙명이 되었다. 수만 번의 기저귀를 갈면서, 아들이 기저귀를 떼면서부터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 신박하게 생긴 작은 물건을 매일 수도 없이 보아야 했다. 


엄마인 나도 아들의 고추를 볼 때마다 참 신기하고 귀여운데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것이라면 어찌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리. 아들은 자신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재미있게 생긴 고추를 정말 좋아한다. 고무줄처럼 늘이기도 하고, 집어넣기도 하고, 말기도 하고 정말 고추 요정이 있다면 매일 울면서 우리 아들에게 매달릴 것만 같다. 제발 그만 좀 괴롭히라고. 아들은 헐벗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여 고추가 무방비 상태인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고추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팬티를 꼬박꼬박 입히고 있다. 


자신의 고추를 사랑하는 아들의 신체 탐구가 이어지던 어느 날, 아들이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엄마 나 동그란 뼈다귀 있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어 동그란 뭐가 있어?라는 질문을 계속했고, 그다음에는 어디에 동그란 뼈다귀가 있어? 온전한 질문을 이해했다.


그러자 아들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고추 주머니를 가리키며 거기 동그란 뼈다귀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동그란 뼈다귀가 숨어버렸단다. 아들과 나는 동시에 웃었다.


나의 굳은 머리로 며칠 밤을 고민하고, 얼마 남지 않은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 써도 세 살이 안된 아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를 못 따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난다. 남성의 몸에 있는 두 개의 공이 이렇게 귀엽고 예쁜 이름으로 승화될 수 있다니. 아들이 고추에 대한 무한 애정으로 열심히 탐구한 결과다.


글자에 관심을 갖고, 사물의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는 아들이 대견하고, 좀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조급증이 들 때가 있지만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주춤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의 노력으로는 가장 얻기 힘든 창의력이라는 귀한 능력이 어설픈 배움으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켜켜이 쌓여 온 사회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언어로 사물을 명명하는 순간, 대상이 되는 사물은 빠르게 기존 사회로 들어온다. 그리고 한번 잃어버린 창의력은 되살리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티베트버섯균(티베트버섯균 요구르트 만들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일주일을 넘게 유지해 본 적이 없다) 마냥 애지중지 다루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직은 한 마리 짐승과 같은 아들을 가급적 천천히 사회로 불러오고 싶은 자유인의 마음과 순간순간 조급증과 불안감에 휩쓸리는 평범한 부모이자 현대인으로서의 마음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제 세 살이 되어가는 짧은 육아 경험이지만 아이들의 창의력은 키워야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켜져야 하는 능력인 듯하다. 어느 창의력 교육 과정에서 동그란 뼈다귀 같은 참신한 표현을 배우겠는가. 일단은 게으른 엄마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따라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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