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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식 Jul 13. 2019

광주형 일자리와 쓰레기통 모형

광주형 일자리와 쓰레기통 모형


2014년 광주광역시의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광주형 일자리’가 요즘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제는 대기업의 투자를 받을 만큼 광주형 일자리모델의 내용이 세밀하게 다듬어진 것으로 보인다.


광주광역시의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2016년 7월) 약 3,000억원의 국비 투입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위해 정부에 제출했던 광주형 일자리모델의 구체적 내용인 실행방안을 직접 작성한 인연이 있다. 따라서 누구보다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일간신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지나친 걱정 때문일까?- 내심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 사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주장과 대응들을 보면서 의사결정모형의 하나인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이 불현듯 떠올랐다.


다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이름을 가진(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가 뒤죽박죽혹은 엉망진창이라는 연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쓰레기통 모형은, 그러나 조직의 의사결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분히 긍정적인 시각에서 기술한 이론이다.              


조직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로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문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석작업을 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능한 대안들을 찾아낸 후, 이 대안들을 비교 분석해서 최적안을 찾아낸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 경제인(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위의 ‘합리적 의사결정모형’도 비현실적인 가정 때문에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여러 대안들 중 시간적으로 먼저 떠오르는 ‘만족할만한(satisficing)’ 안이 최종적으로 선택된다는 ‘제한된 합리성 모형(bounded rationality model)’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선택 후에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의사결정을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허버트 사이몬(H. Simon)은 이 모형으로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렇다면 쓰레기통 모형은 어떤 이론일까? 쓰레기통 모형은 의사결정의 과정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규범모형이 아니다. 극도로 복잡한 환경하에 있는 조직이 내부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모형(descriptive model)이다.


지금 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논의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쓰레기통 모형이 얼마간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에 설명을 이어본다.


이 모형을 제시한 코엔, 마치 그리고 올젠(Cohen, March and Olsen)은, 극도로 불확실한 환경에 놓여있는 조직의 상황을 ‘조직화된 무질서(organized anarchy)’라고 표현했다. 조직화된 무질서 상황에서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처음부터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 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고, 또 그 마저도 여러번 바꾸게 된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의 구조, 문제해결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않다. 문제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 또한 우선순위가 바뀌기 일쑤고, 사람들의 참여 또한 시간적 제약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며, 동일한 사안에 대해 수차례의 토론을 함으로써 참가자가 계속 바뀐다. 이처럼 쓰레기통 모형이 말하는 무질서한 상황이란 불분명한 선호, 불명확한 기술(지식) 그리고 유동적인 참여라는 세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어우러져서 어떤 특정한 의사결정이 선택되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의사결정에 관련되는 4가지 요소 또는 흐름(문제들, 해결책들, 참여자들, 선택의 기회들)이 끊임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한 점에서 맞닥뜨리게 되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마치 사무실 휴지통 속의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쌓이다가 어느 순간 깨끗이 비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의사결정은 합리적인 분석의 결과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라는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의 상황은, 코엔 등이 말했던 ‘조직화된 무질서’와 흡사했다. 불분명한 선호, 불명확한 지식 그리고 수시로 바뀌는 참여자들… 공공정책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쓰레기통 모형이 유용하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아마도 그 적절한 사례로서 계속 인용될 것이다.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이 합의의 틀 안에서 노동과 경영의 역할과 책임이 조화롭게 재정의되는 새로운 노사관계가 형성되며, 그 연장선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해소하고, 또한 청년 취업난을 해결하려는 것이 필자가 이해한 광주형 일자리였다. 순서가 그랬다. 비록 지금은 ‘값싼 임금’이 전면에 등장하고,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뒤따르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말이다.


우연, 이기적 동기, 정치적 영향 등 비합리적인 요인에 의해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을 기술한 쓰레기통 모형의 설명에 따르면, 광주형 일자리 또한 여러가지 흐름들(streams)이 끊임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새로운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해결책도 계속 제시되며, 참여자들이 수시로 바뀌면서, 어떤 선택의 시점(주로 정치적인 결단)이 오면- 어느 순간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사후에 정당성으로 포장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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