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는 어떤 경제체제인가?
독일의 경제체제를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라고 부른다.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의 뿌리는 발터 오이켄(Walter Euken)으로 대표되는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us)에 닿아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아데나워 내각(1949~1963)에서 독일의 첫 경제장관(1949~1963)을 역임했고, 2대 총리(1963~1966)가 되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에 의해 신생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기본 경제정책으로 채택되었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 구상은 이미 1940년대에 뮌스터 대학의 교수였던 뮐러 아르막(Müller-Armack, 후에 에르하르트 경제장관 아래에서 국장 및 차관을 거친다)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서독의 2대 총리였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기본적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경제적 효율성 못지않게 사회적 균형 또는 사회적 질서를 중시하는 접근법으로서, 중앙정부의 강력한 조정력을 통해 시장의 배분 효율성을 조정하는 체제를 말한다. 사회적 시장경제 제체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와는 다른, 또 하나의 경제체제이다(제발 사회적 시장경제를 사회주의(계획경제)와 혼동하지 말자. 이 둘은 전혀 다른 체제이다).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에 따른 경제질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은 시장경제의 자유와 효율을 보장해주는 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즉,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경제를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경제시스템이다.
오이켄은 이와같은 경쟁적 경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질서의 범주를 규정하는 7개의 구성원칙(konstituierende Prizipien)과 경제정책에의 개입 여부를 판단하는 4개의 규제원칙(regulierende Prinzipien)을 제시하고 있다.
구성원칙이란 시장가격기제의 자유로운 작동 원칙, 화폐가치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 우위의 원칙, 개방시장의 원칙, 사유재산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 책임의 원칙 및 경제정책 일관성의 원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에 다름 아니다.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Ordo Liberalismus)
이러한 구성원칙들이 지켜지는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시장의 결과에 대해 수정이 요청될 경우(시장실패 및 사회적 약자의 보호 필요)가 생기는데, 이때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이 개입을 위한 원칙이 규제원칙이다. 여기에는 경쟁시장(독점규제)의 원칙, 소득재분배의 원칙, 외부효과 수정의 원칙, 비정상적 공급시장에서의 최소가격규제의 원칙이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미셸 알베르의 말을 들어보자. “경제의 통제는 역사상 전체주의, 특히 나치즘의 특권이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 때문에 1948년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통화개혁 이후, 서독은 명백히 통제경제시스템을 부정하고 자유자본주의 경제의 독특한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여기에는 프라이부르크 학파가 주장하는 세계관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 학파에 의하면, 사회적 시장경제는 두 가지의 기본원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하나는, 시장에서 최대한으로 시장기능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 자유는 무엇보다도 가격의 기능과 관련이 있다. 또 하나는, 시장의 기능만으로는 사회생활 전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의 움직임은 균형이 중요하다. 다른 사회적인 우선항목과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고, 국가가 그것을 보장해야만 한다”.
베른하르트 포겔 아데나워재단(기독교민주당의 싱크탱크) 명예이사장은 질서자유주의와 관련하여 질서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질서는, 강제적으로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공정과 무질서로부터 자유를 지킴으로써 이루어 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수출 세계챔피언 'made in Germany'
독일이 잘사는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독일이 2003~08년 기간동안 수출 세계챔피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경제대국이면서 인구대국인 미국(3억 2천만명), 중국(13억 8천만명) 그리고 일본(1억 2천만명)과 경쟁하여 인구 8천만명의 독일이 수출 1위를 5년 동안이나 달성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2009년부터는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이 부동의 수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헤르만 지몬 교수는 1996년 자신의 책(Heimliche Gewinner)에서 독일 기업의 수출이 이처럼 막강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은 수출의 많은 부분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소기업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이 수위를 달리고 있으면서도 회사를 공개하지 않고, 가족기업의 형태로 운영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작지만 강한 이런 중소기업들이 독일에는 수 천개가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이 책에서 소개된 바로는, 전세계에서 히든챔피언의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이 2.500여개, 이 중에서 1.300여개 기업이 독일 기업이었다.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
헤르만 지몬 교수
지몬 교수는 2007년에 ‘21세기 히든 챔피언‘을 새롭게 선정했는데, 그 기준을 보면, (1) 그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이 3위 이내이거나 혹은 그 기업이 속한 대륙에서 시장점유율이 1위이고, (2) 매출액이 30억 유로 이내이며, (3) 회사를 공개하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다. 우리나라도 수출입은행에서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선정해 오고 있는데, 이는 지몬 교수가 말하고 있는 히든 챔피언과는 전혀 다른 기준에 의한 것이다.
독일의 강소기업들은 대부분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다. 독일의 주식시장이 덜 발달된 탓도 있었지만, 독일의 기업은 전통적으로 자본시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기 보다는, 은행차입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독일에서는 은행이 회사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에 이사로서 참여하여 기업의 경영에 직접 관여한다.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독일 강소기업의 힘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회사가 독일에는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대개 그 회사의 창업자와 그 가족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관점을 달리하여 그 회사에 대를 이어 근무하고 있는 종업원들의 존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독일의 노사관계를 벤치마킹하려는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21세기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된 요하네스 클라이스 사의 직원들. 세계적인 파이프 오르간 제작사인 요하네스 클라이스는 1882년 창립된 이래 직원 수(65 명)에 거의 변화가 없다.
할아버지도 평생을 그 회사에 다녔고, 아버지, 삼촌 그리고 이모도 모두 오래 전부터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아들도 근무한다. 아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는 현재 이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다. 밥상 머리에서도, 주말에 술집에서 맥주를 기울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협력적 노사관계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면 우리의 노사관계도 협력적으로 변화하리라고 기대한다면 ‘아니올시다‘라는 대답을 돌려주고 싶다.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어림도 없는 얘기다.
제도의 껍데기만 모방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 지금 브런치에서 꼼지락꼼지락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제대로 알려야 겠다는 나름의 의무감이라고 해두자. 독일에서 이십 여년을 살면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의 유효성은, 초기 서독 시절의 경제기적(라인강의 기적)과 그 후에 보인 높은 수출경쟁력으로, 그리고 통일 후 혼란스럽던 경제를 수습하면서 보인 능력과 2000년대 말의 세계금융위기 극복을 통해서 이미 입증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