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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와 홍어

25년 3월 3일의 오후 11시

by 에고폴리오

아침 9시, 정말 별일 아닐 수 있는 집안일로 인해 우리는 폭발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답답한 마음에 더 얘기를 하고 싶지만, 더 얘기해도 정리되지 않고

화가 계속 날 것을 알고 있기에, 입이 근질근질한 침묵으로 이어졌다.


출근길을 향하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예전부터 집안일이라는 것은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난제 중 하나이다.

50% 50%로 서로 나누는 정량적 형태로 환산하기엔

복잡하면서 변수가 많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은, 다솜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우린 한 공간에 계속 있었음에도 나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멈추고 단 둘이 있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는 산책도 해선 안되고, 집안일도 해선 안되고, 밥을 먹어서도 안된다.

서로가 좋아하는 시간을 가지더라도, 대화 외의 일을 같이 병행하는 상황이 만들어져서는 안되었다.

목을 축일수 있는 시간만이 허용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솜이와 처음으로 오후 11시 둘이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약간은 적적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이 중간 중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다솜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있었다.


아침에 있었던 억하심정을 서로 얘기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다솜아 내가 너만큼 집안일에 관심이 없고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

"규헌아 너가 가정을 위해 열심히 돈벌러 가는데, 가는길에 면박을 줘서 미안해"


"근데 우리가 살다보면 대화가 고조되고 화가 나고, 그런데 바로 풀지를 못해"

"그러면 화를 5단계로 나누고, 3단계가 되었을 때쯤 이 분위기를 끊을 수 있는 경고성의 언어를 정할까?"

"왜 4단계에 경고성의 언어를 안쓰는데?"

"4단계에는 이미 화가 잔뜩나서 5단계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 안될거야."

"그러면 뭐라고 정할까?"

"음 일단 부정적인 언어로 시작되는게 맞는것 같아"

"그건 왜?"

"안그래도 화나는데 억지로 긍정적인 말을 뱉는다고? 심지어 경고도 안되잖아"

"그럼 서로 싫어하는 음식을 얘기할까?"

(다솜이는 먹는걸 참 좋아한다.)


"오이"

"나는 오이라고 해야겠지, 나는 너무 확실한데 다솜이는 잘 모르겠네. 약간 징그러운거 되게 싫어하잖아"

"나는 홍어라고 할께"

"그래 홍어 좋다. 발음하기도 좋고 들으면 적당히 경고가 되면서 확실히 고조되는 걸 멈추는 것 같아"

"홍어!"

"오이!"


"앞으로 우리 11시마다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 가지는 것 좋을것 같아"

"친한 친구나, 가족일이나, 병이나 그런건 어쩔수 없겠지?"

"내일 11시에 좀더 같이 얘기하자"

"좋아, 내일 11시에 얘기하자"


매일 오후 11시, 우리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30분간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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