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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똥 Jul 01. 2024

꺄베르네 소비뇽의 위로

초심자의 행운 따위

아침 7시 반, 눈이 떠졌다. 알람도 없이 일어난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긴 받았구나’하며 시범 강의 스크립트를 외웠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새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을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대기업 면접을 볼 때도 헤어와 메이크업을 따로 받은 적이 없다. 이번은 대학 졸업앨범을 찍은 후 두 번째였다. 마침 얼마 전, 웨딩 촬영을 한 아는 언니가 추천해 준 샵으로 갔다.


내가 가진 한계에서 최대치로 예뻐지는 게 보이자 나는 신이 났다. ‘진작 이런 것 좀 받고 다닐걸…’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인생에 주요 이벤트가 별로 없었다. 완성된 사진을 엄마께 보내니 엄마도 중요한 날 받을 걸 그랬다며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조금 일찍 면접 보는 학원에 도착했다. 아직 스크립트는 다 외우지 못한 채였다. 나는 미리 성호경을 그었다.’ 제 자리라면 저에게 주세요.’ 원장님과 면접을 마치고 원장실에서 바로 시범 강의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교실에서 할 거라고 생각한 나는 여기서 1차적으로 당황했다.


일단 영어로 5분 간 파닉스 수업을 마쳤다. 원장님은 영어 공부를 어떻게 했냐며 스크립트 없이도 영어를 잘하냐 물었다. 난 결국 스크립트를 외우지 못하고 읽었기 때문이다.


2차적으로 당황한 건 문법 수업을 나는 영어로 준비했는데 한국어로 해야 했다는 것이다. 영어로 하려면 하라고 해서 한국어를 택했다. 원래 한국어로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표정이 좀 굳은 듯한 원장님은 중등 문법 수업보다 초등 파닉스 수업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나 망쳤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다른 지원자가 있으니 합격하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연락 주겠다는 말과 함께 면접은 끝났다.

나는 학원가부터 로데오까지 정처 없이 걸었다. 신입사원 시절 외국인 친구들과 매일 걷던 그 길이었다.

걷다 보니 생각이 좀 덜어지는 것 같았다.


눈앞에 익숙한 와인바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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