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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Jul 21. 2023

<엄마의 초상화> 그려보는 것 만으로도 그리운

그림책으로 마음 안기

엄마... 엄마라는 단어는 어감이 참 좋다.

엄마라고 떠올리고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감정이 오가는 단어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있었다. 엄마 안에서 존재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지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날 때부터 존재하는 이름이 엄마이다.


'엄마'는 엄마가 되어 보아야 더 잘 이해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엄마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엄마를 그리고 있어요.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나와 엄마는 24살의 띠동갑이다. 비교적 젊었을 적 나를 가졌던 엄마는 마흔이 된 나에게 젊은 엄마인 축에 속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계속 바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 엄마 그 옷 나중에 크면 나 입을래, 버리지 말고 나한테 물려줘? 알았지? 약속해?! “


여덟 살 아이에 눈에 엄마는 예뻤다.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사진첩만 보아도 날씬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미 내가 지나왔던 30대의 시절을 한창 보내고 있었을 엄마의 옅은 미소에서 뭐랄까 알 수 없는 희망이 엿보였다.


그때 엄마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을까?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시절 엄마는 나에게 커다란 산이었고 희망이었고,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엄마의 말, 행동,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난 엄마에게 매일매일 잘해주고 싶었다.


강압적이고 무서웠던 아빠는 엄마에게 늘 다정하지만은 않았다. 감정적이었고 보수적이었으니까.

방 밖에서 큰 소리가 나면 언니와 난 두려움에 모른 척, 자는 척을 하며 몰래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 보였다.


엄마가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싸아 둔 도시락에 엄마를 응원하는 편지를 구구절절 적어 보낸 적도 있었다. 아마도 숨어있기만 했을 뿐 엄마가 아파했던 시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는 아빠 곁을 떠났다. 엄마는 막막해 보였지만 슬퍼 보이진 않았다. 아직 가족의 손이 필요한 언니와 나는 엄마에게 커다란 짐이었을 것이다. 혹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살아야 할 이유였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외할머니 댁에서 군식구가 되어 눈칫밥을 맛있게 먹고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는 일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언니는 반항기가많아 일찍이 집을 나갔지만 난 워낙 소심하기도 했고 엄마가 여기 가 있으라고 하면 가고 군말 없이 엄마 말을 따랐다. 내가 왜 모르는 사람들하고 살아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엄마는 나에게 유일한 하늘이었으니까.




이렇게 애틋하고 사랑하는 엄마였는데,,, 솔직히 <엄마의 초상화>를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런 감흥을 받을 수 없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엄마’라은 단어에 감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나는 독립이라는 명목하게 3년 동안 엄마와 단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여자로서 엄마를 가여워하기만 했던 나였는데, 나는 이제 엄마가 더 이상 불쌍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내 젊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모든 걸 쏟았다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건 뾰족한 말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난 무심하게 차려놓은 밥상보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이 말 한마디면 됐었는데... 엄마가 나에게 많은 걸 바란다고만 생각하니 마음이 점점 식어갔다.


한창 꿈꾸고 싶었을 2,30대의 난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과장된 엄마의 성격과 지나치게 내세우는 자존심.

베이비 부머 세대로,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와 생활력 없는 할아버지. 찢어지게 아픈 가난. 첫째 딸과 막내아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버텼던 억척스러움. 가난에 견뎌야 했고 둘째로서의 서러움도 견뎌야 했다.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보다는 홀로 이겨내야 하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꿈꾸는 삶이 아닌 버려진 가족에게 돌아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생존, 할아버지로부터 할머니를 지켜야 하는 사명감, 남매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 엄마의 과업은 늘 피곤했을 것이다.


엄마는 불행히도 가족에게 다정함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강한 척 버텨야 했던 엄마.


하지만 엄마는 사실 아주 여린 사람이다.


자기 방어 기제가 심한 사람들은 유연하지 못하고 뾰족하다. 엄마는 아주 속이 무른 여린 사람이다.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슴도치의 가시를 밖으로 꺼내고 사는 사람이다.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고 나는 이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고슴도치 가시를 안을 수가 없다. 그 가시가 난 매번 아프기만 하기때문이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뾰족한 가시가 있다.언니에게도 뾰족한 가시가 있다.

우리 셋은 이 가시들로 서로를 아프게 한다. 서로를 감싸 안을 방법을 모른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맹목적으로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먼저 더 많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충분한 사랑을 받을 기회를 놓친 나는 엄마를 먼저 사랑해 줄 수 없었다. 나도 엄마도 언니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스스로를 채우기에도 버거운 사람들로 구성된 가족이다.


우리는 서로를 단절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난 가볍게 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오랜 시간 다짐하면서 살았는데 사실 정말 괜찮치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결혼을 하고 난 더 괜찮은 척 가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가고 싶어도 망설이고, 이 관계에 주도권을 가지고 적당하게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 관계가 단절되어도 괜찮다고 주문을 외듯 항상 생각했지만,,, 엄마의 작은 가시에 발작하며 나에게도 가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난 가끔 와르르 무너진다. 아주 엉뚱한 곳에서.


언젠가 엄마가 시장에 있는 초밥집에서 초밥을 먹고심하게 체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동네를 거닐다 엄마가 말했던 초밥집에 이름과 일치하는 가게를 마주했을 때 난 무방비 상태에서 무너졌다.


재래시장 한 곳에 놓여 있는 이름도 유치한 허름한 가게... 그게 왜 그렇게 서럽고 슬프게 느껴졌을까...

<삼식이초밥> ...가게 간판을 보고 그렇게 울일인가


난 뭐가 그렇게 잘나서 항상 엄마를 이겨 먹고 싶을까.


사실 엄마의 화난 표정, 화나 있는 듯한 말투, 한통이라도 먼저 하지 않는 전화, 균형이 맞지 않는 기브 앤테이크.... 모든 것이 불편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날 엄마의 퉁명스러운 그 말투, 표정을 걷고 보니 핵심 메세지가 보였다.


엄마 좀 사랑해 주면 안 되니? 엄마는 항상 외롭다.
밥 잘 챙겨 먹어라...

<엄마의 초상화> 유지연/ 이야기꽃


나는 아직 엄마를 모른다. 엄마의 핵심 메시지를 파악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난 매번 알면서도 그 모습에 치를 떨 거나 아플 것이다. 우리 가족은 고슴도치 가시를 거두지 못하고 여전히 서로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모습이라면 다른 무엇을 바라기 보다 이 모습 이대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모든 단짠버튼이 가족에게 있지만 예전 그 어린 시절에 엄마를 한 여자로 위로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아이에게서 엄마를 대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엄마’ 라는 이름을 거두고 자식을 지키지 위해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여자를 만나러 가야겠다.


<엄마의 초상화> / 유지연/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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