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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Jul 06. 2023

<삶의 모든 색>, 그저 아름답기만 한

그림책으로 마음 안기



<아이의 삶>


여름날 빗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놀았는지 기억하나요?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왜 그렇게 비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비가 오면 우산 없이 방방 뛰어다닌 기억만 있을 뿐.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를 나이지 않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세 찬 물줄기가 나를 마냥 즐겁게 해 줬던 기억만 남았다.

나의 <아이의 삶>은 기억에서 가장 멀리 있음에도 가장 애틋하고 마음이 쓰인다.

눈을 뜨면 항상 혼자였던 아이는 '외로움'이라는 어른의 말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다행인지도 모른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마냥 행복했고 즐거웠으니까.

그때의 내가 괜찮다고 말하니 다 괜찮다. 이번 장맛비에 아이를 보는 안쓰러운 나의 시선도 같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신이 그 시절에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삶의 모든 색> 리사 아이사토 글.그림/ 김지은 옮김/길벗어린이


<소년의 삶>


당신이 당신의 날개로 훨훨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아이의 삶>보다 상황은 더 나빠졌는지 모른다. 아니, 객관적으로 보아도 나쁜 상황이었다.
정상적인 가족 체계가 무너졌고, 내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들과 섞여있어야 했다.

나는 밤마다 혼자 생각해야 할 시간들이 많아졌다.
외로움을 넘어 고립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난 심각하지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안고 있는 특별함마저 느껴졌으니까.
또 다행이다.

아마도 나의 우주를 가득 채워준 친구들 덕분일 것이다.  모두가 공평했던 그때. 소란스럽게 섞인 또래들 사이에서 난 또 행복했던 것 같다.
공허가 조금 있는, 공상이 조금 심한 평범한 소년이었을 뿐이다.


<삶의 모든색> 리사 아이사토 글.그림/김지은 옮김/길벗어린이


<자기의 삶>


어른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나만 그 노래의 가사를 모르는 것 같았어요.

모든 것이 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내 삶은 갑작스레 진한 먹구름과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버린 것일까?

스무 살의 나는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웃기지도 않게 한순간에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다. 진흙에 빠진 발처럼,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기력해졌다.

정착하지 못하고 애착할 대상 없이 떠돌았던 아이, 소년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나는 그들을 위로해 줄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한동안 그냥 같이 아파해야 하는 방법밖엔 몰랐다.

내 안에 안긴 아이와 소년덕에 한걸음도 꼼짝할 수 없었다. 아이가 받아야 할 애착, 사랑, 소년이 받아야 할 관심, 지지가 필요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외롭고 공허했다. 땅굴을 파고파도 끝이 없는 어둠의 긴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또 다행인 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 아이가, 소년이 덤벼들 때마다 숨었던 자연에서 그런 믿음을 주었다. 자연이 주는 다채로운 색들이 내 마음에 상처난 색들을 조금씩 지워주고 있었다.


<어른의 삶>


어떤 날은 삶이 영원할 것 같고 자신이 참 강하다고 느끼지만
또 어떤 날은 버스에 치여 버린 사람같이 처참해졌어요.


매일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삶에서 이겼으면 내일은 삶에 지기도 했다.

행불행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마음먹기에 달라지는 것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또 적당히 모른 척하는, 적당히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어른의 삶을 알게 되었다.

버티는 것에 선수가 되었고 그 가운데 달콤함을 적절히 보상해 줄 줄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가 안쓰럽지만, 소년을 도와주고 싶지만 달콤 쌉싸름한 어른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졌다.

내 삶의 색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덧칠해 온 삶의 색들이 뒤섞여 오묘한 색을 내고 있다.

마음에 든다니, 또 다행이다.


<기나긴 삶>


삶의 모든 순간, 당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결국 인생에 남는 것은 사랑이다.

남길 것도 사랑이고, 가져갈 것도 사랑이다.

타인에게 받은 사랑, 타인에게 준 사랑, 내가 나에게 준 사랑, 주어야 할 사랑

정말 다행이다. 줄 것도 있고 남길 것도 있어서.

기나긴 삶 가운데 난 어느 지점에 있을까

돌아보니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역시 과거의 기억은 추억으로 미화되기 마련이지. 그런 맛에 돌아보는 것 아닐까.


<삶의 모든색> 리사 아이사토 글.그림/김지은 옮김/길벗어린이




그림책 <삶의 모든 색>은 기나긴 삶만큼 두꺼운 그림책이다.

<아이의 삶>, <소년의 삶>, <자기의 삶>, <부모의 삶>, <기나긴 삶>은 다채로운 색들로 인생의 아름답고 찬란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그 모든 삶의 색들을 따라가 보면서 아이였던 나, 소년이었던 나, 어른이 된 나, 그리고 부모가 될 나, 그리고 남겨진 시간까지... 돌아보고 그려보면서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찌릿찌릿 아프기도 하였다. 삶이라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을 순 있지만 쉬운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난 자꾸 삶이란 것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유한한 삶 속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인간의 삶. 태어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낸 <삶의 모든 색>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누가 뭐래도 삶의 모든 색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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