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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Aug 17. 2023

요조를 닮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내맘대로 독서

나의 인생 책


데미안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내 기준에서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한 책이었다면 이방인은 달랐다. <인간실격>의 요조가 떠오르면서 뫼르소 또한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뫼르소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모르쇠에게 동화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이해해 주고 싶었다. 요조나 뫼르소 그들의 결핍에서 오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에  공감하는 부분이 컸고 그 부분에서 책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던 것 같다. 제목에서 오는 쓸쓸함 또한 좋았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 모두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것. 그러니 딱히 쓸쓸해할 것도 딱히 억울해할 것도 없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다.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자기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이방인의 첫 문장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로 시작한다. 이 첫 문장에서 뫼르소의 무심하고 관조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심한 그의 표면적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살인의 죄보다 더 무거운 죄를 씌우려 한다. 

 

1부에서 어머니의 죽음 직후 무심한 그의 행동을 덤덤히 지켜보았지만 2부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그를 둘러싼 재판의 초점이 잘못 맞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꼈다.


이름 없는 아랍인의 죽음에 애도하기보다 당장 죽게 될지 모를 뫼르소에게 과연 죄가 있는 것인가를 따져 묻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뫼르소에 입장에서 억울하였고 뫼르소의 편을 들고 있었다.  뫼르소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전해졌던 것일까?

 

분명 그에게 살인의 죄가 명백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랍인을 죽인 것은 정당방위 일 것이다.  뫼르소가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닐까?’라는 합리화를 하기도 하였다. 어느새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나에게 있어 뫼르소의 죄는 씻어졌고 오로지 그에게 닥친 죽음 앞에서 갑갑함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에게 씌워야 할 진정한 죄목은 무엇인가?

 

뫼르소는 일관적인 태도로 인생의 무의미함을 말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삶이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 깨닫고 있다. 이방인의 삶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그 자신의 삶을 살았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뫼르소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인간실격에  요조가 떠올랐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타인의 눈으로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볼 때  낯설게만 느껴지는 나 자신의 삶과 그 안에서의 무력감이 요조와 뫼르소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가끔은 삶이 생각한 대로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나 자신 밖에서 나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특별할 것도 위대할 것도 없는, 고민이 작아지는 순간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다른 곳에서 이 삶으로 온 낯선 이방인이다. 뫼르소의 말처럼 누구나 특권을 가진 존재로서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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