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독서
책을 펼치니 쓸쓸한 냄새가 풍겨서 마음이 조금 찡긋했지만 '잎싹'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닭장 안에 갇혀 매일 같이 알만 낳던 잎싹은 늘 항상 소원을 간직했다. 마당으로 나와 자유롭게 거닐며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아 키우는 꿈. 잎싹은 갑갑한 닭장 안에서 마당을 바라보며 희망했다.
아카시아 나무 잎사귀가 아름답게 꽃 피우는 것을 보고 자신도 아카시아 잎사귀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어 비밀스럽게 잎싹이라는 이름을 혼자 지어 간직했다.
비록 폐계가 되어서야 잎싹은 마당 밖으로 나왔지만 절망의 순간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답답한 닭장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잎싹은 알을 낳아 키우리라는 소망에 더욱 가까워졌고 간절해졌다.
그러나 행복을 꿈꾸는 잎싹을 기다리는 닭장 밖의 삶은 위험했고 힘겨웠고 지독히도 외로운 삶이었다. 어쩌면 그저 답답하기만 했던 닭장 안이 안락하고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잎싹은 닭장 안으로 다시 돌아가길 원치 않았다.
죽음이 도사리는 밤이 두려웠고 외로웠지만 잎싹의 삶은 날마다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친구가 생겼고 잎싹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잎싹은 더 이상 외로운 혼자가 아니었다. 닭장 안에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한 마리의 폐닭이 아니었다. 무서울 것이 없을 만큼 지켜내고자 하는 사랑으로 인해 강해지고 있었다.
잎싹은 자신의 소망으로 낳은 초록머리를 훌륭하게 성장시키고 헌신하며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 생각했던 소중하고 귀한 초록머리와도 이별을 해야만 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초록머리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잎싹은 초록머리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초록머리를 사랑했던 것 같다.
물론 가야지. 네 족속을 따라가서 다른 세상에 뭐가 있는지 봐야 하지 않겠니? 내가 만약 날 수 있다면 절대로 여기 머물지 않을 거다. 아가, 너를 못 보고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만 떠나는 게 옳아. 가서 파수꾼이 되렴. 아무도 너만큼 귀가 밝지 못할 거야
잎싹은 이렇게 모든 소망을 이루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잎싹의 삶은 예전과 달랐다. 이전에 느꼈던 외로움과는 다른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잎싹은 모든 순간을 기억하려고 했다. 소중한 것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잎싹의 삶은 외로운 죽음으로 마쳤지만 잎싹은 죽는 순간마저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꿈을 꾸었고 소망을 이룬 삶이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닭장을 넘어, 마당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온 잎싹은 그 누구의 삶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려움 앞에 작아지지 않았다.
절망 앞에서 희망을 꿈꾸고 사랑 앞에서 용기를 가졌다. 사랑의 모든 색깔을 이해한 잎싹이었다. 아카시아가 꽃을 피워내듯 죽는 순간까지 빛나는 자신의 삶을 선택한 잎싹이 더 이상 힘겨워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