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춘기 일기
<나의 아저씨> 는 나의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이다.
결핍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 그들이 만든 따뜻한 울타리.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많은 장면 중에 특히 기억의 잔상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내내 감정 없이 무표정하기만 했던 이지안
처음엔 어둡고 청승맞은 지안의 캐릭터가 답답하기만 했는데, 그런 이지안에게 깊숙이 빠져 들어 몰입했던 순간이 있다.
이지안이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우는 장면
참았는지 모른 척했는지 모를 지안의 모든 감정이 폭발했던 장면이다. 자기를 위해 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싸워주는 박동훈을 보고 지안은 주저앉아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었다.
소리 내어 꺼억꺼억. 나도 같이 꺼억꺼억 울었다.
지안이 흘리는 눈물. 그 눈물에 내 감정도 함께 터졌다. 지안이 흐르는 눈물에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으로 살아갔을 이지안의 삶.
누군가 나를 위해 싸워주는 한 사람.
그 사람으로 인해 지안의 마음속 응어리가 폭발한 듯하다.
가끔, 혼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혼자, 혼자, 또 혼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때
그렇게 소리 내어 울었었다. 우는 이지안을 보고 불현듯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주변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살았지만 가끔 그렇게 무너질 때가 있었다. 혼자가 무섭진 않았는데 서러웠다.
응석 부리고 싶고, 기대고 싶었는데, 누구보다 잘 기댈 수 있었는데 ,마치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것처럼 주변 상황이 돌아갔다.
자기 연민은 좋은 감정이 아니라지만 철저하게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나 자신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조금은 아린다.
마흔에 이른 지금의 나는 적당히 기댈 줄도 알고 적당히 참을 줄도 알고 적당히 넘길 줄도 안다.
'적당히'의 의미를 너무 잘 알아버려서 조금은 퍼석해진 감은 있지만 그래도 감정 조절을 잘하고 있는 편이다.
이제 의지와 기대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꺼억꺼억 우는 것은 피할 수 있다.
나도 너만큼, 너도 나만큼, 우린 각자 ‘만큼’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여서가 아닌 ‘만큼’의 짐이 버거울 때가 있을 뿐.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면서 오열했던 것 같다.
울고 있는 지안의 눈물에 공감했다.
혼자였을 지안에게 공감하여 흘린 눈물이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해 애써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느낀 뜨거움의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박동훈은 훗날 우연히 마주친 지안을 보고 조용히 묻는다.
지안, 평안에 이르렀나
이제는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또 혼자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나는 평안에 이른걸까?
지안의 눈물 끝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보았다.
그녀의 눈물이 따뜻했다. 따뜻해서 보기 좋았다.
함께의 찰나들을 차곡차곡 튼튼하게 쌓다 보면 혼자라고 느껴지는 외로움의 성이 무너진 다는 것을 지안은 알게 되었을까?
애쓰며 살아왔기에 우리는 때론 아프지만
너무 깊숙이만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안아주고 서로에게 기대어 조금씩만 나누어 울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