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미 Aug 16. 2023

사랑받아온 사람만이 사랑받을 줄 안다.

사십춘기 일기

오늘은 집착스럽고 집요한 내 '꽂힘'에 대해서 말해보아야겠다.


난 눈치도 빠르고 타인 배려를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점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종종 당황스럽다.


알고 보면 두껍고 예쁜 가면을 잘 쓰고 있을 뿐이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나.


조금만 더 이른 시대에 태어나 결혼했다면 분명 소박을 맞았거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일찍이 결혼 생활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것 같다. 예전부터 이 이상한 성격은 쭉 계속되어 왔다.


관종이면서도 누가 나한테 조금이라도 집착하거나 관심을 가지면 그 순간부터 상대의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관심받고 애정받고 싶어 하는, 하지만 또 너무나 혼자 있고 싶은... 그러면서 맨날 외롭다고 말하는. 이건 또 무슨 지랄 맞은 성격인지...


아직은 결혼 생활이 낯선, 그것도 주말부부 1년 차.


부모님들이 자주 전화하라는 말들도 그냥 하시는 말들도 우리 엄마이건 시댁이건 그때부터 마음속에 부아가 치미면서 삐뚤어지고 싶어 진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은 괜찮은데 '해라~'이 말부터 꽂혀 들린다.


그냥 어른들 맘 편하게 한발 물러서면 좋은데 반항기가 샘솟는다. 그저 서로 안부를 묻고 나에게 애정이 있다는 확인의 말씀들인데 나의 발작 버튼이 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동안 가족이건 회사이건 지나치게 순종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모계, 부계 유전적 기질을 살펴보면 욱하는 성질로 화를 모아 참았다가 속으로 곪고 곪게 만들어서  엉뚱한 곳에서 빵 터뜨려버리는 좋은 성격을 물려받았다.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히 파급력 있는 성격이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에 착하고 순하고 무엇이든 잘 들어주고 고집 없는 사람처럼 구니까...


사춘기 시절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난 무조건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내가 진짜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나고 보니 착하다는 말로 인정욕구를 채우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들과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못했던  나는 밖에서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칭찬이 없는 우리 집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학교에서 한 두 번 받다 보니 너무 달콤했던 것일까

어른들 말씀도 잘 듣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이 시키는 심부름은 야무지게 해내고 마는 착한 아이.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친구들이 기댈 수 있는 아이.


내 체육복은 전교생이 다 돌아가면서 한번씩 모두 입어서 학기말에는 항상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에 시험 답안을 보여 달라는 친구들을 모른 척하지도 못했다.

오죽했으면 자기는 안 보여 줬다며 쌜쭉대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한참 쑥덕거리기 좋아하며 결속을 다지는 친구들 관계에서 난 유독  조용히 있었다.


지나고 보니 바보 같은 행동들도 많았지만 나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다 괜찮았던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나 보다. 그래야 사랑받는 줄 알았다.


이랬던 나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진짜 착한 줄만 알고 나조차 잘 속여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를 가만히 지켜보면 그다지 착하지도 않고 그려려니 할 수 있는 무던한 성격도 아닌 것 같다....진짜 나의 모습을 나는 알아버린 것 같다. 갑자기 우울해지네 ㅎ.ㅎ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와 진짜 나의 얼굴은 다르다. 뭐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무조건 착해야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꾸만 그 가면이 깨지려고 한다. 내 진짜 모습이 자꾸 드러난다.


이제부터 진짜 잘해야 할 나이인데, 착한 딸, 현명한 며느리를 기대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싶지가 않다. 어찌해야할바를 몰라 스트레스만 더 쌓이는 것 같다.


한참 현명해야 할 나이에 어른스럽지 못하고 삐뚤어지고 있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나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었나...


결혼을 하고 나니 명절이며 양가 가족 생일이며 챙길 것들이 은근히 많다.

아주 많은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곰살맞아 어른들을 잘 챙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러한 새로운 미션들 앞에 부담감만 커진다.

계획형 인간이 아닌데 명절, 생일은 달력에 늘 계획되어 있고, 아 이제쯤 안부전화할 때가 되었는데 생각하면 더 전화기를 누르기 어렵다.


유독 전화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것은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다.

어린 시절 다른 집에 맡겨졌어도 엄마는 나에게 안부 전화를 거의 한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찾지도 않았다. 오죽했으면 날 키워준 친척 어른이 신기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사랑도 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받을 줄 안다.


나에게 너무 잔인하고 슬픈 말이다.

그렇게 외롭다며 매일 밤마다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렸는데 사랑과 관심도 마뜩잖아하고 왜 이모양이 되었을까?


처음 남편의 가족들을 보았을 때 우리 집과 달리 화목하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재밌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신기하기만 했다.  여기에 내가 소속되다니 그런 남편과 새로운 가족을 만나 좋기도 하였다.


언니는 빨리 독립을 했고 어린 나는 매일 밤을 홀로 지새우며 내 가족이 아닌 친지, 엄마 지인,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나는 늘 혼자 공상하며 자라왔다.


그때는 외로운 게 뭔지 모르고 한참 친구가  가장 소중한 존재로 들어서는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결핍을 몰랐는데 그때의 외로움, 공허함이 스무 살 때부터 찾아왔다.


이것이 독이라면 독일까?


사랑을 넘치게 주시려는 시댁 어른들의 사랑을 야무지게 받아먹지 못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엄마가 간절히 되고 싶기는 한데 이런저런 나의 모습들로 자신이 없다.


이제는 착한 척도 못하겠고 마음을 숨기는 일도 잘 못하겠다.


거기에다가 질러놓고 후회하고 항상 미안해하는 찌질한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되었다.


물리적 시간과 다르게 난 유치해져만 가는 듯하다. 큰일이다.

어릴 때는 어리광을 부릴 때가 없었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유아기로 퇴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 부려야 할 어리광, 애착에 대한 집착,,,

이런 것들을 꼭 짚고 넘어가야 아이들이 쑥쑥 성장하는 것처럼


사랑받는 아내, 예쁨 받는 자식, 며느리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싶은데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결혼을 함으로 난 나를 더욱 깊게 돌아보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자신을 꽁꽁 끌어 안고 지냈는지 알게 되었다.


'난 원래 이렇게 자라왔어' 라며 남편을 설득하려 들기만 했는데 나의 주장만을 내세울 수 없는 것이 결혼 아니겠는가.


숫자의 나이와 마음의 나이는 다르다.

어른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나이는 다를 것이다.

내 안에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산다. 아직도 세상밖이 무섭다고 한다.

계속해서 따뜻하게 마음을 녹여주면 얘도 언젠가는 마음을 열겠지...


                    

작가의 이전글 첫 번째 결혼기념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