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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Oct 03. 2021

서울 개구리, 떠나기로 결심하다

수도권 밖으로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나도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외조부모님도 모두 서울 출신이시다.

그렇다. 나는 이른바 서울촌놈, 서울깍쟁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엄청 좁고 모든 인프라를 서울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친구와 '시청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당연히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을 생각했고, 인천에 살던 친구는 인천 지하철 인천시청역을 생각해서 하마터면 엇갈릴 뻔했다.

지난 추석, 부모님 댁에 가는길. 내게 서울은 이런 이미지다.

하지만 이제 나의 직장은 수원. 지금회사 앞 나와 나이가 비슷한 아파트에 세 들어 산다.

부모님께서우리 집에 처음 오실 때 '너희 집은 어느 지하철역으로 가면 되니?'라고 여쭤보셨다.(원에도 지하철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1.6km 정도 된다) 나는 강남역에서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오시라 했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서울 밖에서 살아보지 않 부모님은 '우리 딸이 시골에서 고생한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때는 물론 집 상태도 고생할만했다)


나는 어디에 살아야 행복할까

회사 주변은 조금 오래된 계획도시이자, 꽤 큰 주거단지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빌라, 그리고 중간중간 상업단지가 위치한 형태이다. 대부분의 신도시가 그렇듯 '아파트-상가-아파트-상가'가 반복되다가 사무실이나 대형 쇼핑공간이 튀어나오는 구조이다. 서울시민에서 경기도민이 된 후에는, 대중교통으로 어디든지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다. 버스 준공영제가 적용되지 않아 배차간격이 길고 빙 돌아가는 버스노선, 구석구석 닿지 않는 지하철 노선, 그리고 걷는 재미없이 차도 옆으로만 쭉 뻗은 길. 초등학생 때부터 버스와 지하철로 골목길과 학원, 학교를 누비며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던 나다. 더구나 길도 익숙지 않은데 어디든지 자차 이해야 하는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은 너무 벽처럼 느껴졌다. 거리가 멀어지니 친구들도 잘 못 만나고, 차가 없어 다른 인프라도 누리지 못하니 심리적으로는 점점 고립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획된 도시는 아파트 중심의 거주공간과 계획된 상권 덕분에 길이 네모반듯하다. 반면에 내가 자란 서울의 동북부는 오래된 동네라 골목길이 몹시 복잡하다. (출처: 네이버지도)

그런데 수술 후, 내 몸에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장기가 하나 없어졌고 식사량도, 체력도 너무 많이 줄었다. 내년 초에 전세기간이 만료되면 계속 살까 이사 갈까를 고민하다가 왠지 서러워졌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 몸을 끌고 대출받으랴, 집보랴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너무 암담했다. 전에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내가 더 노력해서 어떻게든 고치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퇴사하면 대출금 일시에 다 갚아야 하는데, 몸이 이래서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집주인이 전세금마저 올려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죽기 전에 내 집에서 마음 편히 살아볼 수 있을까?

뭔가 다른 선택이 필요한 때가 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내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생계를 위한 일을 롱런하려면 회사에서 쫓겨나도 지낼 곳이 있는, 주거 안정이 필요하다. 언젠가내 고향 서울오래된 빌라를 사서 여기저기 고치며 괜찮은 공간 살보고 싶다. 그런데 이것은 점점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갔다. 서울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빌라를 사는 것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물가상승률은 이미 내 연봉의 상승률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대출도 안된다. 내가 근로소득으로 목표금액을 모을 시점에 부동산은 더 올라있을 것이다.

서울부터 수원까지 투기과열지구로 묶여있다. 빨간색이 진할수록 주택담보대출이 제한된다. (출처: 호갱노노)

실리콘밸리 개발자는 실리콘밸리에 살 수 없고, 판교 개발자는 판교에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수도권 외곽의 집도 더하면 더했지 지금 느끼고 있는 심리적 고립감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 그 비싼 돈을 주고도 이런 외로움을 주는 집을 구하는 게 맞는 걸까?

그래, 애매한 수도권 말고 예 지방으로 가보자.

직장과 가족과 친구들은 잠시 접어두자.


좋아, 결심했어! 근데 어디로?

오느른이라는 유투버를 보고 '나도 시골 폐가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수도권의 큰 도시인 수원에서도 이렇게 답답한데, 하물며 대중교통 인프라도 부족하고 어디든 차로 이동해야 하는 시골은 어떨지... 현실적으로 이건 접기로 했다. 차가 없고, 대도시의 복작복작함이 좋은 나는 역사가 긴 대도시에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그런 도시는 몇 개로 좁혀진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아하-)

머릿속에 노래 한 소절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더라도 연고가 수도권에 있는 이상 KTX나 SRT를 이용하기 좋은 경부선과 호남선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그런 거점역과 광역시를 중심으로 몇 군데를 심한 끝에, 나는 대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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