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터디 카페
어느 날, 그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었다. 아직 스터디 카페에 있다던 그는 잠시 기다려 달라 말했고, 알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5분이 지날쯤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컴컴한 방 안에 홀로 빛나는 휴대폰을 받았다. 수화기 너머 얼굴을 바짝이고 있을 그의 숨소리가 흘러왔다.
매우 진지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또, 좋은 사람 같다며 마음이 끌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겠다고 답한 뒤에도 통화는 꽤 이어졌다. 그의 말투는 차분하지만 각져 있었다. 각져있는 말은 뜻을 바로 전할 수 있었고, 듣는 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창 밖에는 늦은 밤이 흐르고 있었다.
그중 본인은 지금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는데, 다음 날 만난 그의 작은 손을 보며 컴컴한 복도의 한가운데에서 통화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2 사라 코너
그와 내가 만난 곳은 어느 체육 시설이었다. 공단의 끄트머리에, 그것도 언덕에 위치한 그곳은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샛길을 비집고 겨우 가야 하는 곳이었다. 체육 시설의 뒤로는 규모가 꽤 큰 스테인리스 공장과 연구 시설이 있고, 밑으로는 세차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세차장 앞으로 이제 막 세를 확장한 국밥집이 있었는데, 이것들의 한가운데에는 회색의 얇은 판자를 성벽처럼 높게 세워 의지하는 아주머니가 거주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곳에 체육 시설이 있으리라 짐작할 수 없었고, 거주지가 있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처음 본 그는 다른 이들과는 남달랐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 보통은 넘는다.'라는 흔한 비유로는 그의 남다름을 정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굳이 정의를 해보자면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라 코너의 한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순둥순둥 한 얼굴과는 달리 강한 근육과 날렵함, 기구에 대한 높은 적응력과 기술에 관한 빠른 이해도는 앞서 말한 대로 한국판 사라 코너라고 해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 그는 인기가 많았다. 아기자기한 얼굴과 맑게 웃는 모습, 그리고 탄탄한 몸매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3 꼬리표
가끔, 그는 스스로에게 꼬리표가 붙어 있다고 말했다. 꼬리표에는 실체가 없었다. 어디에, 어떤 식으로 붙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떤 색을 띠며, 길이는 얼마인지, 넓이는 얼마인지 등 알 수 없는 그것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사회의 시선이었다. 사회의 시선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그것에 대해 말할 때 그의 표정만큼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4 사진
사진은 어디서 배웠냐는 물음에 그는 고등학교 시절이라 답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며 같이 배운 것이라고 했는데, 모든 사진에는 구도와 각도가 깔리고 그 위로 피사체가 존재한다 말했다. 그의 눈에서 사물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을 심미안이 궁금했다.
그와 처음 다녀간 장소는 자유공원이었다. 벚꽃이 막 피어 흐드러지던 3월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손에 휴대폰을 들고 찍었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며 깔깔거렸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의 곳곳에서 사진 촬영하던 커플과 주차장의 뒤 쪽으로 벚꽃잎을 불어 날리던, 그러곤 지쳤는지 담배를 꼬나물던 커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활짝 웃는 그의 얼굴도 뚜렷하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내려가던 중 거울을 마주쳤다. 긴 벽에 달린 작은 거울이었다. 그 안에 우리 두 사람만이 담겨있었는데, 그 안에 그가 걱정하던 꼬리표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