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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Jun 14. 2020

살면서 싫어하게 된 두 가지

#에세이 27

#1 나는 가을의 팽팽한 하늘이 싫다. 하늘의 찢어진 구름들과 인기척없는 빈 거리,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은 바람이 싫다. 그것이 가을을 탄다는 것이면 난 분명하게 가을을 탄다. 깊게 타고 오래 타서 힘들다. 그 계절을 생각해보면 난 늘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좌불안석이 된다. 이상한 것은 뭔가 하고 있어도 좌불안석이다. 가을 낙엽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 치워야 할 노동의 수고로움과 겨우 매달려 있는 갈색의 것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차라리 몽땅 떨어져 한번에 확 치웠으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과 겨울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은 좋아하지 않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뜬 쨍쨍한 해가 온 땅을 내리쬐는 여름, 북동풍이 몰고 오는 시베리아의 무거운 냉기가 큰 대로와 좁은 골목 사이들을 헤집고 다니는 겨울이 난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름, 겨울과는 달리 봄과 가을의 날씨는 뭔가 애매하다. 물의 온도로 비유해보면 미지근하다. 뜨거운 것도 아닌 것이 시원한 것도 아니다. 밤은 춥고, 낮은 덥다. 그러다 밤이 되면 또 추워지는데, 덧입다 벗었다가를 반복하다 때를 놓치면 감기 기운은 여지없이 몰려온다.


여름과 겨울의 날씨는 다르다. 뚜렷하다. 애매한 것이 없고, 복잡한 것이 없다. 옷들이 매달려있는 옷장을 보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반팔 반바지와 점퍼와 코트의 명료함이 있다. 이 계절 속에서 해야 할 것들은 정확했다. 여름엔 조깅을 하거나 시원한 바닷가를 간다. 겨울에는 무조건 따뜻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내일이 춥고 더울지 예측할 필요가 없다. 오늘이 덥거나 추웠다면 내일도, 모레도 같기 때문이다.


#2 나는 버스가 싫다. 나에게 버스는 정확하지 않다. 요즘은 정류장이나 애플리케이션으로 노선과 위치를 충분히 알 수 있고, 도착 시간까지 예측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난 버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버스로 등하교를 하며 느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게다가 난 성격이 급하다. 딱하면 딱이어야 한다. 이 딱이라는 것은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존재하는 목적지와 이동하는 차량에서 성격 급한 나에게 시간은 늘 모자라다.


그래서 교통수단 중엔 지하철을 가장 좋아한다. 믿을 수 있고, 굉장히 신뢰한다. 농담 조금 보태보면 지하철이 인간이라면 나는 그에게 돈도 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의인화된 지하철의 모습은 분명 믿음과 신뢰의 형상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지하철이 다니는 깜깜한 지하터널은 막힐 일이 없다. 철도 위의 지하철들은 서로의 신호에 맞춰 거리를 두고 내달린다. 정확하고 균형 잡혀있는 것에 안정감을 느낀다.


지하철 안은 쾌적하다. 시간대에 따라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지만 일단 버스보단 앉을 곳도 많고 서 있을 곳도 넉넉하다. 계절에 맞게 에어컨과 히터를 틀어주는데, 문자로 세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늘 신기하다. 그리고 사람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다. 사람 구경은 나에게 꽤 중요한 요소이다. 기계음과 함께 열리는 지하철 문 너머로 들이닥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달랐다. 헤어스타일, 옷, 신발, 시계 그리고 표정. 뭐 하나 같은 게 없었다. 같은 것이 없는 광경이 세상이 살아 숨 쉬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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