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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Jun 03. 2020

5일의 마중

영화와 단상 #3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단단의 표정은 단호하다. 어떤 사건에 대해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하다. 한껏 찌푸린 그녀의 미간에선 강한 분노마저 느껴진다. 야무지게 양갈래로 딴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반면, 왼쪽 펑완위는 전혀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다. 재킷의 짙은 밤색은 깊게 그늘진 그녀의 얼굴과 매치된다. 바닥을 향해있는 시선은 길었고, 긴 시선의 끝엔 누군가의 환영이 아른거리는 듯하다. 초점 없는 눈과 달리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타들어간다.


관료 - 루옌스가 사고를 쳤습니다.


펑완위 - 옌스가 사고를 쳤다고요? 무슨 사고예요?


선전대 사무실의 관료는 단단과 펑완위를 불러 앉히고 취조하듯 말했다. 그의 말투는 사방이 꽉 막힌 사무실처럼 건조했고 딱딱했다. 말속엔 깊은 의심과 경고를 품고 있었다.


관료 - 그 교활한 반동분자가 공연 도중에 사라졌어요. 기차역이 시내에서 멀지 않거든요, 최근에 그와 연락한 적이 있나요?


관료는 마치 그녀들이 공범인 것 마냥 말했다. 펑완위는 침착했고, 옆쪽의 표정을 겨우 숨긴 커진 눈의 단단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펑완위가 답했다.


펑완위 - 아니요, 십 년 넘게 연락이 없었어요.


관료 - 그래서 오늘 오시라고 한 겁니다. 탈주범의 행방을 알면 즉시 신고하고 조사와 체포에 협조하세요. 그리고 입장을 확실히 밝히세요. 지금 당장이요.


혼내는듯한 말투의 관료는 그녀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관료는 구두로라도 확인을 받아야 마음이 놓일 듯했다. 먼저 입을 연 단단의 표정은 완벽하리만큼 단호했고 결의에 찬 듯한 말투였다.


단단 - 그는 저와 상관없으니 당의 결정에 따를게요.


펑완위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상


10년 동안 연락이 끊긴 루옌스는 그의 남편이다. 대학교수였던 그는 피아노를 좋아했다. 불어를 할 줄 알았고, 늘 겸손했다. 딸인 단단과 아내 펑완위를 사랑했다.

1960년대 일어난 문화 대혁명 때, 그의 남편은 반동분자라는 죄명으로 끌려간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그의 가족은 알 수 없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행방을 펑완위는 10년 만에 듣게 된다. 입에 올릴 수 없는 이름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는 행동은 그녀를 공범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그는 울 수 없었다. 추억할 수 없었고, 사진 한 장 꺼낼 수 없었다. 세상에 루옌스란 이름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누군가의 앞에서 슬픔과 불안 그리고 연민과 걱정을 숨기는 모습은 애처롭다. 감정을 숨겨야지만  어디 있을지 모를 그를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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