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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Jun 01. 2020

서유기 - 선리기연

영화와 단상 #2

눈을 감은 표정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하다. 그의 이름은 지존보이다. 그는 이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듯하고, 앞으로 미련을 가져서도 안 되는 듯하다. 머리에 쓴 테는 알맞았다. 금색이었고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긴듯하다.


금테를 쓰기 전, 지존보 혼자 있던 동굴에서 어떤 음성이 들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금고아를 쓰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사의 정에 마음이 움직이면 반드시 너의 머리를 조일 것이다.


허공에 울리는 음성은 지존보에게 익숙한 듯했다. 그는 말을 받았다.


-알겠소.


어떤 음성은 말한다.


-또 다른 할 말이 있느냐?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 지존보는 허공에 대답한다.


-난 과거에 사랑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소.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후회하는 것이오. 만약 하늘이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그리고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단상


스토리라는 것이 주는 강한 힘을 알게 되었다. 화려한 특수효과와 세트장에 돈을 쏟아붓는 요즘 영화와는 다르다. 깊은 울림이 있었고, 지존보의 고민과 고뇌, 슬픔이 느껴졌다. 저 금고아를 쓰지 않는 이상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자하는 죽는다. 하지만 쓰면 자하는 구할 수는 있지만 어떤 음성의 대사처럼 인간사에 정을 둘 수 없다.


선리기연을 처음 본 것은 10대 후반쯤이었다. 감독이나 배우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냥 웃겼다. 조잡한 CG와 복장들 그리고 허접한 세트장을 보며 말했다. '중국이 다 그렇지 뭐.'

20대 중반에 다시 볼 일이 있었다. 당시 슈퍼액션이라는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이 있었다. 추억의 영화들을 주로 틀어주었는데, 그 채널에서 늦은 밤에 방영하고 있었다. 다시 본 영화엔 인간사의 모든 것이 녹아 있어 어릴 때처럼 웃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인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최근 어느 글쓰기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강사님은 후회에 대해 말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 중 하나인데, 그때 본인이 내린 그 선택은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것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걸 선택했을 뿐이다. 후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 강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말은 지존보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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