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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Jul 16. 2024

골목길 야생화 48 박주가리

독성물질로 왕나비만 기르는 털북숭이 꽃


박주가리

오늘은 ‘박주가리’ 꽃을 소개합니다.

가을에 익는 열매 모양이 표주박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표주박보다는 양이나 소의 뿔을 더 닮았어요. 크기도 그렇고요. 반쪽으로 쪼개지면서 씨앗을 날리는 모습인 '박쪼가리'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해요.


꽃부터 열매, 씨앗, 용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특이한데요. 그 생태 또한 유별납니다. 그래서인식물 관련 책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스타이기도 합니다.

박주가리 꽃은 보랏빛 도는 은은한 분홍색 또는 흰색으로 핀다. 잎은 길다란 하트 모양.

협죽도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
얕은 산과 들판의 풀밭, 해발 1천 미터의 고산에서도 자랍니다.
길이는 3m쯤.
줄기나 잎을 자르면 흰색의 유액(乳液)이 나오는데요. 인간에겐 크게 해롭지 않지만, 곤충에게는 치명적인 독성물질이래요.

잎은 마주나고 긴 심장형, 가장자리가 밋밋하죠. 앞면은 반질반질 매끄럽고요. 뒷면은 가루가 묻은 듯한 분록색을 띠어요.
잎자루 길이는 2~5cm.

종처럼 생긴 꽃이 7~8월에 은은한 분홍색, 혹은 흰색으로 펴요.
총상꽃차례, 즉 중심축에 꽃대가 있고, 이를 둘러싸며 무리 지어 꽃이 핀 모양을 이뤄요.
각각의 꽃벌어진 종처럼 생겼어요.

5개로 깊게 갈라지며 안쪽에 털이 빽빽이 나 있습니다. 꽃잎은 넓은 바소꼴.


꽃은 폭이 좁아요. 꽃가루받이에 나서 줄 수 있는 곤충은 개미, 파리, 풍뎅이 등.

진딧물이 많은 편입니다.

10cm 길이의 열매는 표주박이라기보다는 소나 양의 뿔 모양이다. 표면에 돌기가 있다. 다 익으면 반으로 갈라진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열매는 10~11월에 익어요.

길이 10㎝의 뿔 모양으로 표면이 오톨도톨.

덜 익은 상태에서 따먹기도 했다는데, 들척지근한 맛에 부드러운 솜뭉치를 먹는 식감이 좋다는군요.

익어서 두 쪽으로 벌어지면 그 속에 고운 솜털이 가득 들어 있어요. 이 솜털을 겨울옷에 넣기도 하고, 도장밥 즉 인주(印朱) 만들었고요. 바늘을 꽂아두바늘겨레 내용물로 썼어요. 바늘집, 바늘쌈지, 바늘꽂이, 바늘방석이라고도 하지요.

바늘을 보관하는 다양한 형태의 바늘겨레. 바늘꽂이, 바늘집, 바늘쌈지, 바늘방석이라고 불렸다. 안에는 박주가리의 솜털을 채워넣었다. 사진= 두산백과

씨앗은 길이 0.6~0.8㎝로 편평해요.

각각의 씨앗마다 명주실, 비단실처럼 은백색을 내는 많이 달려 있어요. 씨에 달린 이 털을 종발(種髮, 씨털)이라고 하는데 길이는 2cm 안팎. 바람이 불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비행 수단을 갖춘 거죠.



열매가 다 익으면 반으로 쪼개지면서 벌어진다. 씨앗에 달린 털(종발) 덕분에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연한 새순은 나물로 먹는답니다.

민간에선 피부에 사마귀가 날 때 줄기의 유액을 발라 치료했기에 '사마귀풀'로 불렀고요.
피가 많이 날 땐 열매 속의 털을 상처에 붙여 지혈했답니다.
뱀에 물렸을 때도 즙을 발랐대요.


박조가리, 새박, 새박덩굴, 새박조가리, 교등(交藤), 구진 등(九眞藤), 노아등(老鴉藤), 뢰과(賴瓜), 비래학(飛來鶴), 학광표(鶴光瓢), 나마(蘿藦), 비학래(飛鶴來), 노괄표(老鴰瓢), 천장각(天漿殼), 양각채(羊角菜), 작표(雀瓢)로도 불려요.


한방에서는 박주가리의 꽃이 핀 전초(全草) 뿌리(根)를 햇볕에 말린 것을 나마(蘿藦), 열매는 나마자(蘿藦子), 열매껍질은 천장각(天漿殼)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썼답니다.

강장, 강정, 해독의 효능이 있다고 하네요.


학명은 메타플렉시스 야포니카(Metaplexis japonica).

 메타플렉시스(Metaplexis)는 라틴어로 ‘뒤얽힘'이라는 뜻으로 '덩굴', 종명 야포니카(japonica)는 '일본'을 뜻해요.


영어명은 '거친 감자'라는 뜻의 러프 포테이토(Rough potato). 또는 '우윳빛 유액'이 나오는 식물을 통칭하는 밀크위드(Milkweed)라고도 부릅니다.


꽃말은 ‘긴 여행’.


■ 박주가리의 유액이 독성물질이라고 했죠?

이걸 먹은 곤충은 심장이나 전신이 마비될 정도로 치명적.

그래서 다른 곤충은 감히 접근조차 못 하지만, ‘왕나비’의 애벌레는 박주가리 잎을 먹고 자라요. 나중 왕나비가 되어도 독성이 그대로 몸에 남아 있다네요. 왕나비를 잡아먹은 새도 목숨을 잃을 만큼 치명적.

새들에게 왕나비는 절대로 먹어선 안 되는  곤충으로 대대손손 각인되겠죠.


그런데 크기나 색깔, 무늬가 왕나비와 매우 닮은 '총독나비'가 있다는데요. 포식자인 새들은 총독나비도 무서워 못 먹는대요.

박주가리가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독성물질. 그것을 독식할 수 있는 왕나비 애벌레. 어미가 된 나비 흉내 낸 짝퉁, 총독나비.
결국 최대의 수혜자는 박주가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총독나비가 되는 셈이죠?


제주왕나비가 등골나물 꽃에서 꿀을 빨고 있다. 사진= Judy님의 블로그.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왕나비(Parantica sita)는 제주왕나비라고 불리는데요. 제주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남부지방 저지대에서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해요. 제주왕나비는 날개를 편 길이가 10 cm에 달하는 대형종인 데다, 날개와 몸통에 그려진 무늬가 화려하고 아름다워 '왕'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나비랍니다.


왕나비류는 장거리 이동의 왕이기도 해요. 제주왕나비만 해도 애벌레로 제주에서 겨울을 나고 성충이 된 뒤, 중부 지방까지 1000km 이상을 비행합니다.


세계적으로는 제왕나비(Danaus plexippus), 또는 군주나비라고 불리는 나비가 '제왕'이라는 이름값을 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캐나다에서 출발해 멕시코까지 3200km~ 5000km를 날아갑니다. 이동 성공률은 30%.

힘겹게 따뜻한 멕시코에 도착한 제왕나비들은 짝짓기를 하고는 이내 죽어요.


그 2세들이 봄에 부화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요. 이동 중에도 번식을 하죠. 그 2세, 그러니까 3세 또한 비행을 이어받아 결국은 목적지인 캐나다에 도달해 여름철을 살다가 다시 가을에 멕시코로 간답니다.


미국 조지아대 연구진은 30% 확률로 장거리 비행에 성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연구했대요.

그 결과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제왕나비의 특이한 날개 무늬가 이들의 장거리 여행을 돕는다"라고 발표했어요.

대부분의 제왕나비는 주황색 바탕에 검은 테두리, 그리고 테두리 안 흰색 반점으로 이뤄진 날개를 갖고 있어요. 연구진이 대이동에 성공한 제왕나비를 살핀 결과, 날개 테두리 안에 흰 반점이 많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연구진은 바닷새 중 흰 깃털에 검은색 테두리의 날개를 가진 새일수록 날개 안에 온도 차이가 많이 생겨 공기 저항이 낮아지기 때문에 더 먼 거리를 쉽게 날아갈 수 있다는 이전 연구를 발견했어요.


이 원리가 제왕나비에게도 적용될 것이라고 추측한 연구진은 날개에 흰색 반점이 많을수록 검은 테두리와 온도 차이가 많이 생겨 공기 저항이 감소하기 때문에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답니다.

- <소년조선일보>, 2023년 7월 11일 자.


박주가리의 꽃말이 무엇이라고 했죠?

'먼 여행'!

소름 돋지 않나요?

애벌레 때 박주가리의 독성물질을 먹고 자란 왕나비류가 결국은 '먼 여행'의 제왕으로 등극한다니ᆢ.


■ ■ 식물과 수분(受粉) 동물, 식물과 초식동물, 식물과 육식동물, 식물과 잡식동물인 인간ᆢ.

이 모든 게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식물'을 출발점으로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원조의 원조를 따져 올라가면, 결국 식물이 원조인 것이지요.


그 공동체 안에서 인간만이 주인이고, 만물의 영장이라 우쭐대는 건 터무니없는 오만이라고, 말 없는 식물들은 우리를 웃음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모든 꽃들은 웃는 모습으로 피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닮아야 할 건, 웃음으로 모든 걸 대신하는 바로 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24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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