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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Jul 23. 2024

골목길 야생화 49  닭의장풀

너무 흔해 억울한 쪽빛의 한여름 아침 꽃


오늘은 흔하디 흔해서 '억울해것도' 같은 닭의장풀을 소개합니다.


'억울해할 것도' 같다는 건 꽃의 색깔부터 모양, 생명력과 번식하는 방식이 너무도 독특해 스타로서 손색이 없는데, 흔하다는 이유 '스타성'이 주목받지 못하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달개비'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전국의 인가나 울타리 근처, 길가나 산속 숲 가장자리, 건조한 곳보다는 습하지만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랍니다.


이 친구들은 일부러 찾으려오히려 잘 안 보이고요. 스쳐 지나가다 얼핏 눈에 들어온 뒤 주변을 살펴보면 많이 있는 줄 알게 되는 그런 꽃입니다.

아침나절에 이슬을 머금은 이 꽃이 보이면 한여름이구나 새삼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여름꽃입니다.


오늘은 작심하고 닭의장풀을 스타로 만들어보고 싶군요.

전문용어가 다수 등장하는 만큼 지루할 수도 있음을 양해해 주세요.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쪽빛 꽃잎에 노란 수술이 어우러진 닭의장풀 꽃.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우선 두 장의 쪽빛 꽃잎이 가장 먼저 눈에 띄죠?

보석으로는 사파이어, 잉크로는 파란색.

 중에 이런 색은 흔하지 않답니다.


아래쪽에 보트 모양의 주머니가 있어요.
그 안에 꽃잎, 암술, 수술이 들어있다가 고개를 내미는 겁니다.

그 주머니처럼 생긴 걸 포(苞)라고 해요.


* 포(苞, bract)

변형된 잎의 일종으로 꽂이나 눈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며, 형태가 다양하고 붙는 위치도 여러 가지이다. 

포엽(苞葉, bract leaf)이라고도 한다.


아래쪽 보트 또는 조개 모양의 포에 숨어 있던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쌍둥이 꽃도 흔하다. 사진=들꽃사랑연구회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

키는 15~50cm.

꽃은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정오쯤 지기 시작해 저녁 무렵에는 자취를 감춰.


하루만 핀다고 해서 영어로는 데이플라워(Dayflower). 흔하다는 뜻을 덧붙인 커먼 데이플라워 (Common dayflower)라고 합니다.


2장의 남색(쪽빛) 꽃잎이 미키마우스의 귀처럼 벌어져 있죠?

이게 닭 볏 닮아 닭의장풀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는데요.

그보다는 닭장 근처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요.


닭똥은 너무도 지독해서 그 주변에는 풀들이 자라기 어렵답니다.
계분(鷄糞)이 훌륭한 비료이긴 하지만, 그건 썩혀서 바싹 말린 뒤에나 그렇지요.

닭장 근처에서도 잘 자랄 만큼 생명력이 뛰어난 풀이라는 겁니다.


아래쪽에 반투명한 꽃받침이 있고요. 노란색 수술들이 길게 늘어져,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처럼 보이기도 해요.


줄기는 땅에 엎드려 가지를 치면서 점차적으로 일어섭니다.
굵은 마디마다 잎이 어긋나게 자리하는데  생김새는 대나무 잎과 흡사. 잎자루는 없고 밑동이 줄기를 감싸며 가장자리는 밋밋. 잎몸은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잎 모양은 밑이 둥글고 끝은 뾰족해요.
밑 부분이 얇은 막질(膜質)로 되어 있어요.


** 막질(膜質, 꺼풀 막)

얇은 종잇장같이 뒷면이 조금 비쳐 보일 정도의 질감.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나온다. 축대 아래로 뻗으면서 뿌리가 드러나 있다. 흙을 만나면 닻처럼 굳세게 땅으로 파고 들면서 증식한다.

줄기는 마디마다 각을 이루면서 성장하는데요.

이 마디마디에서 땅에 닿으면 배의 닻처럼 굳센 뿌리를 내리며 성장과 증식을 합니다.

노란색 수술은 바깥부터 긴 것 둘, 중간 것 하나, 짧은 것 셋, 이렇게 3 종류 6 개가 있어요.


꽃가루받이에 직접 관여하는  암술과 수술인데요. 수술 중에는 꽃가루를 생산하지 못하는 가짜 수술이 있습니. 모양만 수술이지, 기능은 꽝. 

헛수술, 위웅예(僞雄蘂), 가웅예(假雄蘂)라고 해요.

대개 헛수술은 꽃가루를 생산하는 진짜 수술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곤충을 유인하는 게 주된 임무이지요.


*** 헛수술(staminode)
수술의 형태는 남아 있지만 퇴화되어 정상적인 꽃가루를 생성하지 못하고, 그 기능을 잃어버린 수술을 헛수술이라 한다.


1개의 암술이 2개의 긴 수술 사이에 있다. 중간에 역 Y자형 수술 1개, 안쪽에 X자형 헛수술이 3개.

닭의장풀 수술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안쪽 X자 모양의 짧은 수술 3개는 헛수술 즉 가짜입니다.

중간의 역 Y자형 수술 하나와 맨 앞 O자형의 긴 수술 2개가 진짜고요.


이들의 역할 분담이 기가 막힙니다.

먼저 맨 안쪽의 화려한 X자형 헛수술은 꽃가루 운반자인 ‘꽃등에’를 유혹하는 미끼이자 삐끼, 즉 호객군입니다.

꿀이 아예 없기에 나비 등은 찾아오지 않아요.


꽃등에가 이들의 유혹으로 입맛을 다시며 달려듭니다, X자형 수술로 향하는 사이에 가운데 역 Y자형 수술이 등에의 몸에 꽃가루를 묻히지요. X자형에서 소득을 얻지 못한 등에. 역 Y자형을 공략할 때, 수술대가 투명해 눈에 잘 띄지 않는 맨 앞의 O자형 수술 2개의 꽃가루가 묻혀지는 거예요.


바깥부터 2-1-3개의 수술들이 각각의 역할을 한다. 가운데의 가장 길고 투명한 건 암술.

만약 꽃등에가 한 마리도 방문하지 않은 채 꽃 질 시간이 된다면?

앞에 튀어나온 암술 한 개와 양쪽 O자형 수술이 포의 안으로 말려들어갑니다.
이때 자가수분(自家受粉)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꽃잎을 닫은 채 자체적으로 수분할 수 있꽃을 닫힌 꽃(폐쇄화, 閉鎖花)라고 해요.


**** 닫힌꽃
폐쇄화(閉鎖花, Cleistogamous flower).
꽃이 피지 않고 제꽃가루받이(自家受粉, self pollination)에 의해 결실하는 꽃을 닫힌꽃이라 하며, 개화하고 수정하는 열린꽃에 대비하여 사용하는 용어이다.
제비꽃과 제비꽃 속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열린꽃을 같은 그루에  함께 가지고 있다. 딴꽃가루받이(他家受粉, cross -pollination)처럼 다음 대에 유전자형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지만, 곤충 등의 꽃가루  매개자가 없더라도 확실하게 종자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열린꽃으로 종자를 생산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꽃등에가 닭의장풀 꽃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이상의 설명은 일본의 잡초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책 <풀들의 전략>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이 설명과는 다른 학설이 있어 소개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닭의장풀의 비밀은 꽃봉오리가 벌어져 꽃이 피었을 때는 이미 90% 이상의 꽃들이 자신의 꽃가루로 수분을 마친 상태라는 것이지요.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의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자가수분을 한 것이라면 왜 구태여 꽃잎을 펼쳐 꽃을 피워냈을까요? 애써 찾아간 곤충들만 허무하게 말입니다."

- 이유미,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앞서 일본인 학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타가수분 실패 후 자가수분을, 이유미 박사는  90% 이상이 자가수분 후 타가수분을 위한 개화의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흔한 데 비해선 너무도 차이가 많이 나는 주장이라 어리둥절합니다.


열매는 9~10월경에 타원형으로 달립니다.


학명은 Commelina communis.

뒤의 종소명은 '흔한, 보통의, 보편적인' 등의 뜻. 역시나 흔해서 붙여진 거죠.


우리말 이름은 달개비, 닭의장풀, 닭의밑씻개, 닭의씨까비, 닭의꼬꼬, 닭이장풀, 달레개비.


일본에서는 꽃이 모자와 비슷해서 모자화(帽子花)라고 답니다.


한자명도 다양한데요.

압척초(鴨跖草), 우이염초(于耳染草), 압식초(鴨食草), 수부초(水浮草), 노초(露草), 대압척초(大鴨跖草), 복채(福菜), 죽엽활혈단(竹葉活血丹), 남화초(藍花草), 남화채(藍花菜), 삼각채(三角菜),

계거초(鷄距草), 계장초(鷄腸草), 번루(蘩縷) , 압각초(鴨脚草), 죽절채(竹節菜), 벽선화(碧蟬花).


계(鷄)는 닭, 압(鴨)은 오리, 죽(竹)은 잎 모양과 마디, 남(藍)은 꽃 색깔과 관계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마디가 있는 줄기를 잘라 물에 꽂으면 금세 뿌리를 내리며 자라요.
당나라 시인 두보는 '꽃 피는 대나무'라며 수반에 꽂아 키웠다고 하네요.


꽃에 독성이 없어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소주에 띄워 먹기도 한다는데, 그 운치가 그만이라는군요.


꽃은 비단이나 종이를 물들이는 염료로 쓴대요.


자외선을 흡수하고, 방사능을 감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답니다.


한방에선 이뇨, 신장, 해열, 인후염, 천식, 위장병 등에 쓰고요. 꽃핀 줄기를 말렸다가 끓인 물에 목욕하면 신경통이 낫는대요.


꽃말은 존경, 변심, 순간의 즐거움, 그리운 사이


이토록 긴 설명을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담은 세밀화. 출처=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 유역·사할린·북아메리카 등지에서 자라고요.


자생 유사종에는 애기닭의장풀, 좀닭의장풀, 큰닭의장풀, 흰닭의장풀이 있답니다.


이만하면 생긴 모양부터 생태적 특성까지 어느 하나 '스타'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겠죠? 너무 흔해 억울한 꽃!

스타를 만들고 싶었지만, 성공스럽지는 못한 듯합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를 청/날 출/어조사 어/쪽 람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다는 뜻으로 스승보다 제자의 실력이 뛰어난 것을 말하며. 청람(靑藍), 출람(出藍)이라고 한다.


본래 '남()'이란 여뀌류의'쪽'이라는 풀을 원료로 한 청색 빛깔의 염색재이다. 이것을 풀어 독에 물을 넣고 저으면 거품이 생기는데 이것을 남수(藍水)라고 한다. 여기에 실이나 헝겊을 담그면 선명한 빛으로 물이 든다.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가 말하기를, '배움이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청색은 그것을 쪽빛에서 취하였지만 쪽빛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그렇게 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 순자, <권학> 재인용


여기서 순자가 강조하는 것은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항상 노력해야 하며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김원중, <고사성어 백과사전>


'쪽빛'으로 유명한 고사성어로 긴 글 마무리짓습니다.


2024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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