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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Sep 11. 2024

골목길 야생화 56 망초

망할 망이 아니라, 다보록하게 올망졸망  핀 꽃


망초(草)

낮의  찜통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기는 해도, 아침저녁으로는 그나마 산들바람 불죠?
자정 무렵부터 해뜨기 전에는 제법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겨울 추위가 한 번에 쑥 물러나지 않듯, 여름 더위도 하루아침에 싹 가시지는 않아요.

봄을 앞둔 얼음장 밑 냇물 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듯, 이 즈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시간대 또한 조금씩 앞당겨집니다.

물과 바람은 자연의 이치를 알려주는 전령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산들바람은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바람을 말해요.
'바람'의 어원은 무엇일까요.
뜻밖에도 바라~, 바르~와 같은 의성어에 명사형 어미 -암이 연결된 거래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바람이니, 지나갈 때 들리는 소리를 이용해 불렀겠죠.

바람은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요. 동쪽에서 불어오면 동풍, 서쪽에서 불면 서풍, 남쪽은 남풍, 북쪽은 북풍.
연히 우리말 이름이 따로 있어요.
샛바람(동풍), 하늬바람(서풍), 마파람(남풍), 뒤바람(북풍).


결국 바람 앞의 글자인 새, 하늬, 마, 뒤가 동서남북의 우리말이라는 얘기?
그렇습니다.

동풍은 해가  뜨는 쪽에서 부니, (ㅅ) 바람.
서풍은 하늘에서 불어내려 온다 해서, 하늬바람.
남풍은 앞에서  부니, 파람.
북풍은 에서 부니, 바람.

우리 전통 가옥이 주로 남향이라서 이 혹은  , 즉 앞이 남쪽이 되기에 앞바람 또는 마파람으로 부릅니다.
뒤는 당연히 북쪽이라 뒤바람.


대부분 앞뜰, 앞마당, 앞문이 남쪽에 있고,
뒤뜰, 뒤란, 뒷마당, 뒷간은 북쪽에 있는 거죠.
북쪽 오랑캐족을 '되놈, 된 놈, 놈'이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뒤가 변해 '되', '돼'가 되었대요.

요즘 부는 바람은 늦더위 씻어주는 산들바람, 선들바람이라고 하는데요.
옷깃을 날릴 정도가 되면 솔바람, 또는 실바람.
추수할 무렵 부는 바람은 가수알바람이라 한다네요.

'바람'은 그 의미가 확대되며 변주를 계속하는데요.
바람나다, 바람 들다, 바람기, 바람결, 바람잡이, 신바람, 맞바람ᆢ.


한자의 바람 풍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풍토, 풍수, 풍월, 풍류, 풍상, 중풍 등등.


이상은 천소영 저 <우리말의 문화 찾기>에서 요약 정리했습니다.


7월의 망초 꽃. 키가 큰 데 비해 꽃은 있는 듯 없는 듯 작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오늘은 '망초(草)'라는 풀입니다.


계란 프라이처럼 생겨 소꿉놀이 할 때 '계란꽃'이라고 불렀개망초고.

개망초보다 키는 두 배 정도 크지만, 꽃만큼은 반의 반도 안 될 만큼 자잘하게 피우는 게 망초입니다.


둘 다 외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歸化植物)입니다.


망초는 개망초보다 안 예뻐요.

일반적으로 접두어 '개'가 붙는 건 짝퉁, 2류, 못 먹는, 못생긴 등등 비하용으로 붙인다고 했는데요. (골목길 야생화 9 참조)

이건 완전 반대입니다.

오리지널이 짝퉁보다 모든 면에서 처져요.

꽃은 자잘, 키는 멀쑥, 뿌리는 골골.


망초는 한발 먼저 들어온 덕분에 망초라는 이름을 얻었는데요.

비슷하기는 해도 더 예쁜  친구가 늦게 들어온 신참자인지라 개망초가 되었습니다.


둘 다 아메리카가 고향이고, 국화과의 두해살이풀입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다가 죽는 벌레지요? 한해살이풀은 1년, 두해살이풀이란 2년을 삽니다.

가을철 땅에 떨어진 씨가 싹이 터서, 잎을 가진 채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꽃을 피우고 말라죽는 게 두해살이풀.

실제로는 해를 넘길 뿐, 사는 기간은 1년입니다.

그래서 두해살이풀을 '해넘이 한해살이풀', 또는 월년초(越年草)라고 부른답니다.  


민간에서는 망할 망(亡)을 써서 망초라고 불렀다는데요. 

 이름의 유래와 수입 경로에 정설은 없지만, 모두가 썩 유쾌하지 않아요.


농민들이 뽑아도 뽑아도 안 없어지니까 밭을 망치는 풀이라고 해서 '망풀'

일제가 경인선(1899년)과 경부선 철도(1905년) 부설 작업 때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일부러 심었다고 해서 '왜풀'.

그게 아니라, 받침목(침목. 枕木)에 쓰기 위해 수입한 미국산 원목에 묻은 씨앗이 철길 주변부터 피어 전국에 퍼졌다는, 비교적 정설.

1910년 나라가 망하던 해에 난데없이 온 산하에 피었다고 해서 망국초(亡國草).

6.25 때 미군들의 군화에 묻어 들어왔다는 설 등 분분합니다.


미국에서도 1860년대 철도 부설 이후 망초와 개망초가 철로 주변부터 급격히 퍼졌다고 해요. 영어명은 캐나디안 플리베인(Canadian fleabane).


일본 역시 철도 부설 후 퍼졌기에  '철도풀'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일본에서 개망초는 원예종으로 들였다가 야생화가 되었다고 해요. 이런 걸 일컬어 '인위적귀화식물'로 분류합니다.


왼쪽이 망초, 오른쪽은 개망초.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어떤 설이거나, 망초와 개망초는 번식력이 뛰어난 식물임을 입증합니다.

망초 한 그루에서 82만 개 이상의 씨앗을 맺요. 개망초는 그보다 적지만 30만 개나 된답니다.


열차가 달리면서 일으키는 엄청난 바람.

엄청난 수의 씨앗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겠지요?

그래서, 망할 망(亡)을 쓰는 망초가 아니라, 우거질 망(莽)을 쓰는 망초랍니다.


망초 생태를 소개합니다.

키는 1.5m 이상으로 멀대같이 삐쭉해요.

온 줄기에 털이 있고요.

잎은 어긋나고 촘촘히 달립니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요.


꽃은 7~9월에 피는데, 꽃이라기엔 너무 초라하죠.

원줄기 끝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져서 전체적으로 원추꽃차례를 이룹니다. 설상화(舌狀花)는 흰색이고 총포(總苞)는 종 모양. 길이는 약 3cm.

꽃이 피었는지 모를 정도로 작아요.


열매는 길이 1.2mm.

민들레처럼 씨앗보다 2배 정도 긴 흰색의 갓털, 즉 관모(冠毛)가 있습니다.


뿌리가 약해서 손으로 잡아당기면 쑥쑥 뽑히지만, 농약으로 없애기는 쉽지 않대요.

반면, 개망초는 뿌리가 엄청나게 강하고 넓게 퍼져 베어내야 합니다. 


둘 다 양지식물이라 숲 속 그늘에선 거의 볼 수 없지만 산과 들, 버려진 묵정밭과 빈집 뜰, 공터, 담벼락 아래나 아스팔트 틈새 모두가 삶의 터전입니다.


9월의 우리동네 빈 집 뜰에 자라는 망초. 꽃보다 열매를 맺을 때 그 존재감이 더 뚜렷하다.


너무 귀찮고 못난 점만 꼬집었나요?


망초류가 살았던 밭은 토양이 안정되어 농사가 잘 되므로 '풍년초'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질소를 고정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연한 순은 데쳐서 우려낸 다음 나물로 무쳐먹거나 국거리로 쓴다.

한방에서는 전초 말린 것을 비봉(飛蓬)이라 하며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리고 가려움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성분으로 리모넨(limonene)과 리나로올(linalool)이 알려져 있다.
- 권순경, <약업신문>


영어명  중 fleabane은 벼룩을 쫓는 데 다는 뜻이랍니다.

이 역시 약효에서 비롯된 이름이지요.


봄망초, 실망초, 주걱개망초, 큰망초 등이 사촌 또는 육촌.

우리말 별명은 가나대연, 망풀, 소연초, 지붕초, 잔꽃풀, 큰망초,


학명은 Erigeron canadensis L.

속명 Erigeron은 '일찍 (early)'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eri와 '노인(old man)'이라는 뜻의 geron의 결합어랍니다.

일찍 개화하고 일찍 결실을 맺는다는 뜻.


꽃말은 화해.


볼품없는 꽃이라, 망초를 노래한 시가 있으랴 싶은데요. 시인들이 자연을 보고 그 의미를 읽어내는 눈은 늘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두 편 감상해 보셔요.


망초꽃으로 서서 - 전원범


눈에 밟히는 너의 그림자 때문에

많은 날들이 가버린 지금까지도

문 밖에 서서 나는,

강물 소리를 받아내고 있구나.


함께 죽어도 좋을

그런 시간의 계단에서

꽃보다 붉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싱거운 웃음이나 달고

망초꽃으로야 피었겠는가.


우리가 어찌 한두 번쯤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사는 일의 서러움으로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바람이 스쳐가는 자리마다

발자욱처럼 피어서

너를 불러보는 저녁나절.


三界의 길목을 다 돌아와서도

흔들리는 하늘을 견디며

지금 내 속살까지 물들고 있구나.


보도블록  틈새에서도무리지어 자라는 망초.


망초 - 정태욱


어린 나이에는 너무 먼 길.

걷다가 풀섶에 주저앉는 길.

주저앉아 먼지 뿌옇게 앉은 검정 고무신 바라보던 황톳길.

아득하게 이어진 산마루 끝까지 나무 한 짐 팔러 가던 이들의 삼베 등걸이 닮은 황톳길.

그 너머 하늘 두둥실 구름 따라 새 순 솟던 슬픔이 슬며시 적막으로 스미던 황톳길.


생각난다.  

할머니 명주 목도리 여우 봄바람  날리던, 그 길 곁  

할아버지 먼 마을 친척집 상가 가실 때  풀 먹인 두루마기 펄럭이던, 그 길  곁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 넘다가  한숨 쉬던, 그 길 곁  

갑자기 소나기 훅 지나가면 황토 냄새 풀풀 솟던, 그 길 곁  

어디든 닥지닥지 붙어 하양 불길로 피는 망초꽃.  


망초꽃 무리가 하얀 불길로 번지면 눈물겹다.

저 혼자 있는 듯 어느새 한데 어울리는 빛나는 힘이 눈물겹다.


칠월 땡볕이 쏟는 황톳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모든 무리 지어 있는 것들은 따지고 보면 눈물겨운 힘이기에 아름답다는 걸.


■■ 두 편의 시 속에서 꽂히는 부분.


칠월 땡볕이 쏟는 황톳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모든 무리 지어 있는 것들은 따지고 보면 눈물겨운 힘이기에 아름답다는 걸.


무리 지어 있는 우리 인간도 따지고 보면 눈물겨운 힘으로나마 화해를 이루고 있기에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요.


그게 일시적으로 붕괴되어 화해는 무슨 화해?

라고 할 수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지만, 무리 지어 사는 우리들 민초는 눈물겨운 힘과 세월의 힘을 믿으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잉태되고, 결국은 꽃피우는 것일 테니까요.



2024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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