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형님이
부르시더니 쪽지 하나를 건네셨다.
쪽지에는 챙겨야 할 시댁분들 제사랑
생신들 날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나하나 달력에 체크하다가 이상해
서 신랑한테 물었다.
"자기야 둘째 아주버님 생신은 언제야?
형님이 깜빡하셨는지 빼먹으셨네.."
"나도 잘 모르는데..."
"아니, 어떻게 형 생일을 몰라?"
"시골에서 무슨 생일을 챙기냐 농사
짓기 바쁜데 미역국이나 먹으면 다
행이지?"
"형님이 이런 거 주셨는데 그럼 다른
분들 생신은 왜 아시는 건데,,"
괜히 내가 더 욱해서 시어머니께 전
화를 했다.
"어머니, 둘째 아주버님 생신이 어떻
게 돼요?"
내가 시집올 때도 울시어머님은 70
대셨고 오랜 투병으로 연로하셨다
"7월 며칠 인가는 가물 가물하다 막내
아가 왜 그러니?"
애아빠는 7남매
나는 18살 차이 나는 큰 형님부터 시작
해 일일이 전화를 돌려 둘째 아주버님
생신 찾기에 나섰고 얼추 7월 15일 정
도라고 예측할 뿐이었다.
그 역시도 정확하진 않았지만 달력에
제일 크게 당구장 표시를 했다.
그날이 되어 신랑한테 시골 어머님댁
에 가자고 했다.
아주버님께 드릴 반팔티도 미리 사고
생일카드도 썼다.
부여에 내려가 케이크를 사 시댁에 갔다
그리고 우린 조촐하게 아주버님 생신
파티를 했다.
시어머니와 애아빠가 감동받으셔서
연실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6살 마음을 가진 아주버님은 새 옷을
입고는 엄청 좋아하셨다.
촛불도 불고 또 하고 싶어 해 2번이나
촛불을 끄는 해프닝도 있었다.
나중에 어머님께 들으니
새 옷을 입고 동네방네, 교회에
다니며
"재수 씨가 이쁜 옷 사줬다"
하고 자랑하며 다니셨다고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받으셨던
선물이셨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생일축하
를 받으셨을 것이다.
나는 뿌듯했고 애아빠는 나한테
고맙다며 울컥했다고 했다.
나중에 시누이들이 그 소식을 듣고
"우리 집에 복댕이가 들어왔네 우
리도 평생 못하고 산 걸.. 고맙다"
하셨다.
난 해마다 아주버님 생신을 챙겨
드렸다.
티도 여러 벌, 여름 점퍼도 사 드리
고 반바지, 운동화등
"재수 씨 내가 맛난 커피 타 줄까?"
나만 가면 부엌에 나와 커피를 타
주신다.
"아주버님, 저번 생신에 사 드린 운
동화는 왜 안 신으세요?"
"이뻐서 아끼는 거야"
"다음에 또 사 드릴게 신고 다니세요"
"아주버님, 저번에 사 드린 반바지는
왜 안 입으세요?"
"이뻐서 아끼는 거야"
주변에 첫날,, 자랑만 하시고 신주
단지 보관하듯 다시 포장해 서랍에
쟁여 두는 아주버님께 나는 꼬셔서
입고 다니시라고 했었다.
시골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출근했던 애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인영아,,, 우리 형 하늘나라 갔대 평
생 아팠던 형인데... 애들이랑 준비
하고 있어 데리러 갈게,,
우리 형 보러 가자"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한 애아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세게 얻어 맞
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며칠 전에도 멀쩡하게 우리 애들이랑
연날리기하며 좋아하던 아주버님
나에게 정체불명의 커피도 타 주셨
다.
큰아이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아이
4학년, 학교에 말하고 두 녀석을 받
아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애아빠가
우는 걸 처음으로 보았다.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한다.
내가 사 드린 운동화를 신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자랑하셨단다.
예배당을 청소하고 집으로 달려 오
셔서는 힘들다고 주무셨다고 그리고
그렇게 하늘에 별이 되셨다.
아들이 너무 오래 자서 흔들어 깨우신
어머니, 그리고 일어나지 못하신 아주
버님,,,
아주버님을 보내 드리고 시골집에서
형님들과 아주버님 짐정리를 하는데
서랍장 안에 박스 하나가 있었다.
박스 상자 안에는 내가 그동안 선물해
드렸던 생일 선물들과 카드가 놓여 있
었다.
시집와 13년을 악의 없이 늘 부족했던
나를 참 많이도 좋아 해 주시고 따랐던
아주버님!
선물 상자를 보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콱 쏟아져 상자를 안고 엉엉 울었다.
옆에서 형님이 토닥 거려 주시며 우리
오빠가 인영이 널 많이 좋아했어 내가
너한테 진심으로 고맙다. 늘 우리 오빠
챙겨줘서...
우리 친정집과는 달리 우리 시댁은
표현에 인색하고 차가운 분위기였다.
오히려 좀 낯설고 했던 시댁 안에서
아주버님이 계셔서 내가 더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13년을 그렇게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아기 새처럼 나를 좋아해 주
시던 아주버님이 가시던 날에는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벚꽃이 활짝
만개한 날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여전히 벚꽃이 피면
"엄마, 우리 어릴 때 부여 가면 큰아빠
랑 놀았잖아 그때 생각난다"
하고 말한다.
내가 선물해 드린 생신 선물을 좋아만
하시고 제대로 다 입어 보시지도 못하
고 가신 아주버님,,,
남겨진 생신 선물만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