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좀 쉬세요"
"아빠 아직 다닐만하다 내용돈은
아직 벌 능력 된다"
하시며 동네 경비일 하시는 아버지
나 어릴 땐 빙그레 회사 다녔는데
동생들 연이어 태어 나니 더 많이
벌어야겠다 싶으셨는지 그 시절
중동지방 가셔서 인부들 밥 해 먹
이며 돈 버시던 아버지
그게 인연이 되어 평생을 남의
나라에서 사신 아버지
내 기억 속에 계신 아버지는 늘
내 나이 6살에 머물러 있다.
5년 전에 나이 70이 돼서야 한국
에 들어오신 아버지
그전에는 1년에 몇 번 휴가차 나
오시고 또 가시기를 수없이 반복
하셨던 아버지
그렇다고 멀리 타양살이 하며 엄
청 많이 벌어 오시지도 않으셨다.
돈이란 게 들어오면 또 크게 나
갈 일도 여기저기 생기더라!
우린 아버지 없이 엄마랑 산 세
월이 더 많았고 늘 남편 없이 고
생하는 엄마를 보며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5년 전, 아버지가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완전히 들어오셨을 때
평생을 아버지와 살비비며 산 기
억이 없어서인지 아버진 그저,
우리에게 낯선 존재셨다.
물과 기름처럼... 2년 정도 지
낸 듯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이러다
아버지가 덜컥 몸이라도 나빠
져서 큰일이 생기시면 우린 아빠
와 제대로 된 추억 하나 없이
헤어지겠다 싶었고 그때,
정신이 확 들었던 것 같다.
미움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리
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
자식 된 도리로 우리가 먼저
아버지를 품어 드려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장녀인 내가 총대를
메고 서서히 아버지께 다가
갔다.
아버지 눈높이를 맞추어 드
리고, 아버지 손을 잡아 드리
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 아버지랑 가까워졌다
처음에도 낯설었고 쑥스럽고 겸
언쩍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젠
아버지랑 친해졌고 조금씩 추억
이 쌓이기 시작했다.
직장생활로 늘 바쁜 동생들~
조금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는
내가 아버지 병원도 같이 가 드
리고
오늘은 아버지 쉬는 날이셔서
아버지 좋아하시는 초밥을 사
드렸다
난 아버지 쉬시는 날을 체크해
종종 아버지 좋아하는 것을 사
드린다.
며칠 전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큰 딸! 아빠가 귤이 먹고 싶은데
귤 좀 사다 줄래?"
아빠한텐 알았다고 하고 상대적
으로 편한 엄마한테 툴툴거렸다.
"아빤 맨날 나한테만 전화해 뭘
자꾸 사달라고 하시네.. 인선이랑
인규한테는 안 그러면서..."
"큰딸이 제일 편한가 보다"
엄마가 그러신다.
동생들한테 톡을 했다.
"얘들아, 아버지가 귤 드시고 싶
다고 하시네 언니(누나)가 병원
모시고 다니니 너네들이 아버지
간식은 책임져라!종종 아버지께
전화해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
요?도 물어보고..
나중에 부모님 보내 드리고 후회
하지 말고 계실 때 잘해 드리자"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 그래서 그날,, 아버지 귤은
드셨어? 누가 사 오긴 했어"
"엉, 귤 한 박스 사 와서 며칠 맛나게
먹었지!"
"잘했네 효도두 함께 같이 해야지
누군 배로 낳고 누군 하늘에서 툭
떨어진게 아니니까 ..
그러고 보면 내 동생 들은 내 말은
또 잘 들어"
"그러게 가끔은 엄마말보다 네 말
을 더 잘 듣더라"
"어릴 때부터 내가 엄마말은 잘 들
었잖아 그래서 게네들이 내 말을
잘 듣는 거 같아"
"그러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 우리 큰딸이 그런 면에선 늘
내 딸이지만 착했지,, 넌 나중에
엄마딸 말고 내 베스트 프렌드로
태어나라"
엄마가 그러신다
나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제사상
잘 차리는 것보다 부모님 살아 계
실 때 잘 하자라는 가치관을 가지
고 산다.
시어머니도 그렇게 봉양해 보내
드려서 후회는 없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랑 친해지는 중
이다.
그리고 아버지랑 더 많은 추억을 갖
고자 노력중이다.
나와 더불어 내 동생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