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ul 06. 2020

퇴사를 하던 날의 회고(2)

나는 왜 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나

  퇴사를 결심한 뒤로, 나는 줄곧 혼자 있고 싶었다.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 누구나 그렇듯 퇴사일을 출발일로 여행 티켓을 예매했다. 목적지는 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처음 가는 여행지 중 그나마 비용이 적게 드는 국가였다. 조용한 나라라는 이야기도 있어 혼자 고요하게 있고 싶었던 나는 대만을 선택했다. 매일같이 사람들의 근심을 듣고 견딜 만큼 나 또한 자아가 강하지 않았던 탓에,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었다. 이직할 곳도, 전직할 분야도 선택하지 않은 채 나는 직장 밖으로 도망쳤다.


  홀로 다녀온 대만이 나에게 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 시간이 편안했을 뿐이다. 내가 매일같이 맛있는 대만 맥주를 마셔도, 중국어를 몰라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대충 때워가며 전기자전거와 스쿠터를 빌려도 누가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여행 일주일 중 절반 이상이 비가 와 창밖으로 오는 비만 봐도 좋았다. 애초에 여행에 꼭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강박적으로 하듯 이 여행에도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그럴싸한 테마를 붙였지만, 나를 찾진 못했다.




  심리상담사 직업을 그만둔 이유는 나에게 버겁고 맞지 않아서였다. 그럼 난 어쩌다 이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 의료사고를 당해 다리에 장애를 얻게 되어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 탓인지 공무원 하라는 말을 꽤나 어렸을 때부터 들었었다. 공무원을 하려면 행정학과에 가야 하는 줄 알고 원서를 쓰다가 다른 학부를 쓴 학교에만 합격을 했다. 그때 '아 공무원은 내 길이 아니었구나. 이제 나의 선택을 하자.'라는 마음으로 심리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학문의 재미와 먹고사니즘은 달랐기에, 진로 고민으로 학교 상담센터를 찾았을 때 그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전쟁통에 안전한 벙커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때의 따뜻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마음에 상담심리학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점점 닳아가고 있었다. 취업은 어려웠고, 정규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담을 진행하면 할수록 자꾸만 한계에 부딪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담자를 돕지 못하는 나에게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이라는 직업에 흥미를 잃고 말라가고 있었다.


지난날 연이은 구직 실패로 인해 좌절했을 때, 아는 박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거긴 네 자리가 아니었나 봐. 네 자리는 어딘가에서 널 기다리고 있단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던 걸까.




  퇴사의 목적은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건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경험은 내 새로운 진로탐색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비록 내가 다시 심리상담의 길로 돌아오게 되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나의 경험은 곧 상담자로서의 기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쌓게 될 경험 중 떠올랐던 건 대학생 때 잠깐 겪어본 회계였다. 당시 직업흥미검사 결과에 나온 수많은 직업 중 '회계'가 눈에 띄어 회계학 원론 수업을 듣다 기말고사 시험 때 울었던 기억이 났다.(재무제표를 만드는 시험이었다.) 그래서 흥미를 테스트해볼 겸 전산회계와 전산세무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게 내 취업길에 도움이 될지 어쩔지 모르지만, 일단 경험이니까.


 혹시 몰라 워크넷에 구직등록을 해놓고 준비한 결과 전산회계는 다행히 합격했다. 그 후 책도 읽고, 자전거도 타고 여유를 즐기느라 세무는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워크넷에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정선거지원단을 모집한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공무원. 공무원. 부모님께서 그렇게 외치시는 공무원 도대체 어떻길래 그러는지 호기심도 생겼다. 혹시 알까? 공무원이 하는 일이 성격에 맞아 정말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게 될지. 더욱이 '정치자금 관련 업무'라는 말이 왠지 회계와 관련이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공정선거지원단 서류를 부랴부랴 써서 내고, 어떻게 합격이 되어 잠시나마 공무원 조직을 그나마 수박 겉핥기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서 깨달았던 건, 길은 정말 어디서 어떻게 열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길이 또 다른 갈림길이거나, 오프로드일지라도 말이다. 그것 또한 주관적이니 마음에 든다 싶으면 한걸음 용기를 내보자.

작가의 이전글 퇴사를 하던 날의 회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