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그 위로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쌓여간다. 생각들이 나를 찌른다. 생각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지만 스스로 만든 생각 감옥에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마저무게가 더해져 점점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마음이 괴로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다. 마음도 몸도 축 늘어져 끙끙 앓는다.
힘들어. 괴로워. 울고 싶지 않아.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생각나는 대로적었다. 작은 숨구멍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 글이었다. 글이라기보다는 끄적임에 가까웠지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적었다. 그러다 나에게 물었다. 왜 힘든 걸까? 무엇이 문제인 걸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나에게 질문했고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스스로 묻고 답하다 보면 얽히고설켜 꽉 막혀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됐다. 정리된 공간만큼 생각이비워지면 머릿속이 한 결 가벼워졌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울고 나면 속이라도 시원해지는 것처럼 나에겐 글이 그랬다. 힘들면 힘들다는 단어를 적었고 행복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도 적었다. 글 속에서 나는 나에게 솔직했다. 후회되는 일 앞에선 나를 마음껏 비난했지만 나를 안쓰러워했고 내가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랐다.
글을 왜 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구질구질한 속을 털어놓을 곳이 고작 나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나를 향한 미움, 비난 일지라도 나에겐 어떤 말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조차도 나는 할 수 있었다. 나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글을 쓰고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전보다는 나를 이해하게 된 거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상처를 받지 않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글은 내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 같은 곳이다. 여전히 마음이 우중충하거나 괴로우면 글을 쓴다. 글은 나를 위해 싸워주기보다는 언제든 팔 벌려 나를 안아주려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