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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남편과 연애시절 얼마 간 헤어져있었던 적이 있다.

기나긴 연애 중 서로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아파서,

더는 이 관계를 이어갈 자신이 없어 이별을 고했다.


그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것은 나였지만 

정작 이별 후 사랑을 잃은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힘들어한 것 또한 나였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를, 그는 나를 여전히 사랑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자신도 용기도 없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뿐이었다.


어느 가을, 전남친이 되어버린 그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꾹꾹 눌러쓴 글자를 한 자 한 자 더듬어내려 가던 내 눈에서는 그렁그렁 차오르던 눈물이 이내 투두둑하고 떨어졌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멀리서 빈다, 나태주 -


자신에게 아픔을 주고 떠나간 여자를

욕하고 미워하며 저주하지는 못할망정

'부디 아프지 말라' 부탁하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애이듯 아팠다.


편지를 품에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에게 부치지 못할 답장을 적었다.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6년 간의 연애를 돌아보며 구구절절이 마음을 담았다.


  편지 말미에 그가 보낸 시에 대한 답시를 덧붙였다.

 오랜 사랑을 끝낸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헤아려 줄 글은 없었다. 그 시는 텅 비어버린 내 마음에게도 위로가 되어줬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 빈 집, 기형도 -   


두 편의 시가 어떠한 상황에서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시인이 깊은 사랑을 하고, 아픈 이별을 했었다는 것 만은 알겠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마음을 이토록 먹먹히 담아낼 수 없을테니까.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든, 모두의 눈물을 자아내는 글이든 모든 작품들은 인생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쓰여지는 듯하다. 그래서 무수한 이별과 고통, 상실과 슬픔 뒤에 명작이 탄생하는가 보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를 되짚어보아도 그러하다.

내 삶을 관통하는 고통과 슬픔이 나를 휘갈기고 지나갈 때 글이라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을 때마다 글을 썼으니 말이다.


아무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감정들을 글이 받아준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마음들을 글은 들어준다.

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글은 깨닫게 해 준다. 


글은 내게 위로와 치유, 통곡과 토설의 수단이 되며

숨 쉴 구멍이자 마른 목을 축일 한 모금의 물이 되어 준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이 글이라는 것을 아마 평생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




사랑을 잃고 나는 썼다.
아픔을 딛고 나는 쓴다.

그리고 

인생을 품고 나는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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