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의 거시기 머시기를 읽으며 글에 대한 나의 무식함을 고스란히 느꼈다. 책 편식자이긴 하지만 일 년에 서른 권 정도의 독서를 하고 있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글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옅게 깔려있었는데 그것을 무참히 깨어준 책이 바로 거시기 머시기다.
책을 읽은 소감부터 이야기하자면 거시기 머시기 하다. 허허. 난 이 책을 읽었지만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나의 내공이 부족하여 책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어 내려간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읽긴 했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적어도 몇 번의 반복을 하며 다시 읽고 말에 대한 탐구를 같이 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말과 관련된 모든 것을 궁금해하시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내신 선생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진정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p15
30대의 유명인사는 인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60대가 되어서는 그 생각이 달라졌다. 경험과 나이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가위바위보에는 관계만이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정상에 선 절대적인 승자는 될 수 없습니다."
=> 만약 내가 가위라면 나는 바위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바위 앞에서 나는 언제나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 앞에서 나는 조금 당당할 수 있었다. 보를 언제나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 자체가 어리석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가위든 바위든 보든 내가 어떤 것이든 절대적인 승자는 없다. 그러니 패배의 감정에 빠질 필요도 승리의 감정에 도취될 필요도 없던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어요. 한국문화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흔하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이 보편화의 오류처럼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어권에서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는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일부분일 수 있다는 것을요.
"클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두었다가 갚아주게나"라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p42
=> 헴록 앞에 의연했던 소크라테스. 만약 내가 헴록을 마셔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질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에도 없던 미운 소리를 했던 순간들을 고해성사하게 될까. 아마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깊은 우물처럼 하고 또 하고 또 할거 같다. 나는 현재에 살기보단 과거에 많이 머무르는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사람은 처음에 "나, 눈먼 사람이에요. 나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정을 사인보드에 썼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 사람이 불쌍해 그 여자가 사인보드에 뭔가를 써줬어요.
"너무 멋진 날이에요. 그런데 난 그걸 볼 수가 없어요." 단어 하나를 바꾸니 대박이예요. 막 돈이 쏟아져요. p178
=>적잖이 놀란 문장이었다. 같은 의미지만 단지 단어만 다르게 사용하니 문장은 힘을 갖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의 감정을 건드리는 문장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초롱꽃을 번역하면 'Hanabusaya asiatica Nakai'가 된다. 비단 초롱꽃뿐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우리의 것을 번역하면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된다.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다. 우리는 왜 우리의 것을 지켜내지 못했을까.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초등학생이 대학교 강의를 멍하게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알아듣는 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눈을 껌뻑 껌뻑이며 그저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흥미로웠고 마음에 작은 불씨 가 일어나 우리의 말을 그저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섬세한 것들을 깊게 알고 싶어졌다. 책을 읽기 시작해 덮을 즈음 나의 눈은 반짝였다. 이어령 선생님이 이것을 아신다면 그곳에서 흐뭇해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 신호등의 비밀, 왜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말할까 궁금했는데 그 비밀을 알려주셨다.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