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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May 29. 2024

5월의 포도 : 생후 71일~101일


수면

연달아 5시간을 자던 포도. 조금 살만하다 싶던 어느 날, 새벽에 깬 포도는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어댔다. 통잠을 기대하고 있던 시기라 갑작스러운 잠투정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처음 몇 번은 기저귀도 봐주고 안아서 달라주기도 했는데, 세 번째부터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얼굴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나타나던 증상이었다.


그날 낮, 남편과 새벽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아인이도 백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깼었고 바로 다음날 통잠을 자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밤이 되었고 어느 정도 기대감을 안고 잠을 청했지만, 포도의 울음소리에 눈을 뜬 건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백일이 점점 다가오는데 통잠의 기미가 없어서 조급해진 나는 아이의 수면문제로 너무나 고생했던 아는 동생에게서 수면교육 자료를 받았다. 퀄리티가 너무나 좋았던 자료 덕분에, 그리고 너무나 순한 기질의 포도 덕분에 수면교육은 순조로웠다. 포도는 수면교육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스스로 낮잠을 잤고, 그다음 날(생후 88일) 통잠을 잤다.

왼: 맘마먹고 쿨쿨 / 오: 밖에서 잘자는 포도


수유 (4시간 텀, 180ml)

포도는 먹태기가 왔는지 먹는 속도가 느려지고 양도 줄었다. 베이비타임이라는 어플에 수유시간, 수유량을 기록하고 다음 수유 때 참고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베이비타임이 그날의 육아 성적표 같이 느껴졌다. 수유텀이 뒤죽박죽이거나 수유량이 적으면 낙제점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한 번은 포도가 너무나 심하게 안 먹어서 나도 모르게 포도의 엉덩이를 때렸다. 감정이 실린 채로.


그 일은 여러가지 감정이 들게 했다. 나는 분명히 수고하고 있는데, 뭔가 잘못하는 것 같고, 아이는 너무 예쁜데, 혼자 있고 싶었다. 포도와 둘이 있는 낮에는 종종 우울감도 찾아왔다. 수유를 하면서 ’댄스가수 유랑단‘이라는 tv프로그램을 봤다. 이효리가 나와서 전성기 때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20대의 내가 생각이 났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지금의 내 모습도 싫었다.

왼: 의욕없는 표정..... / 오: 외식 중


발달 (키 62.7cm, 몸무게 7kg)

인스타그램 돋보기를 보다가 우연히 터미타임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내 기억으론 아인이가 아가 때 그러니까 7년 전쯤엔 거의 쓰지 않았던 말이다. 한 번씩 엎어두면 좋다고 해서 가끔씩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걸 터미타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쨌든 발달에 좋다니까 매일 잠깐씩이라도 해주는데 엎드려서 보는 세상이 신기한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게 귀엽다.


옹알이도 제법 많이 늘었다. 둘이 침대에 누워 포도의 옹알이에 반응해 주는 일이 즐겁다. 최애 장난감 애벌레 인형을 눈 위로 왔다 갔다 해주면 깔깔 웃는다. 타이니러브 모빌도 엄청 좋아해서  어떨 땐 꺄르르 웃으면서 한참을 논다. 그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귀엽고도 알 수 없는 아가들의 세계!

왼: 터미타임 낑낑 / 오: 다양한 표정


아인이

남편은 2주에 한번 정도 교회 사람들과 축구를 하러 다녀온다. 축구에 가기 전까지 일찍 일어난 아이들을 봐주다가 나가기 전에 나를 깨우는데, 아직 새벽수유를 하고 있을 때라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은 시간이 돼서 부랴부랴 나갔고, 아인이는 남편이 나갔는데도 내가 일어나지 않자 나를 깨우러 왔다. 이따가 간다고 말하고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거실에서 포도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아인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포도야 미안하지만 엄마가 이따가 온대.”라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뜩 들어서 거실로 나왔다. 미안하고 고마운 아인이.

예쁜 내 새끼들 오구오구


백일 20230530

우리 포도가 벌써 백일이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 거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바로 육아에 참여하는 남편, 달라진 환경에 큰 불만 없이 잘 적응해 준 아인이, 그리고 순하디 순한 포도까지. 백일까지 무탈하게 왔으니 돌까지도 무탈하게 흘러가기를! 나 자신아 파이팅!!

셀프 백일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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