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정동, 광화문국밥
여름이다. 볕뉘마저도 살을 에는 듯한 더위가 가득한. 초록이 무성한 나무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버티나 싶을 정도로 햇빛이 쨍쨍할 때면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 불을 떼야하는 맛집들은 사람이 없고, 냉면집 앞에는 줄이 한가득이다. 바글바글 넘치는 사람들은 더위를 달래기 위해 시원한 냉면을 찾는다. 에어컨 바람 밑에서 이가 시린 국물을 한가득 머금으면 그만한 피서도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곳곳에도 더위를 피하기 위한 식당들이 곳곳에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집은 구석에 숨어있지만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찾는 그런 집이다. 바로 '광화문국밥'이다.
이름이 국밥인데 평양냉면을 판다니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진식당을 떠올리면 그럴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국밥이 메인음식점이던 유진식당도 평냉의 인기에 올라타 평냉맛집이 됐듯, 광화문국밥도 국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평냉으로 더 유명한 곳 같다.
평일 점심시간, 광화문국밥 앞에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대기한다. 웨이팅을 위해 이름을 적는 종이가 있어서 따로 줄을 서진 않아도 되지만, 사장님이 부르면 바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서 있다.
앞에 웨이팅이 많다고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방 나간다. 12시에 가도 5분만 기다리면 금방 들어간다.
시원한 가게 내부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혼자 와서 먹기도 좋은 다찌 비슷한 자리도 있고, 2인용, 4인용 자리가 곳곳에 있다. 내부 벽에는 메뉴판이 깔끔하게 잘 정리돼 있다.
돼지국밥이 최상단에 있지만 푹푹 찌는 여름날에는 역시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을 물냉면으로 한 그릇 시키고 나의 주목적인 돼지수육을 시킨다. 평냉에도 고기가 있을 테니, 맛만 본다는 생각으로 소자를 주문한다.
주문 후에는 반찬이 자리에 깔린다. 직접 담근 듯한 깍두기, 썰어서 나오는 고추와 마늘, 된장 등이 나온다.
회전이 빠른 만큼 음식이 빨리 나온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수육부터 자리에 나오기 시작하고 곧이어 평양냉면도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이 집의 고기는 메뉴판에도 쓰여 있듯이 사태, 항정, 후지 부위다. 항정과 사태는 종종 보긴 했지만, 후지로 수육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퍽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은 한 가지 묘수를 썼다. 고기를 매우 얇게 썬 것이다. 자칫 퍽퍽할 수 있는 고기를 얇게 썰어서 식감을 살리고, 고기를 부드럽게 했다.
냉제육은 아니기에 잡내가 심하진 않았다. 기름도 끼지 않았다. 다만 돼지 특유의 향은 조금 있었다. 잡내라면 잡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새우젓이랑 먹거나 된장+마늘의 조합으로 먹으면 누린내가 좀 가셨다.
장점을 뽑자면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육향 가득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입가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굳이 수육을 먹으러 여기까지 올만큼 뛰어난 맛인가. 그 지점에 대해선 의문이다. 이 집은 미슐랭 맛집인데, 아마도 수육은 미슐랭급까진 아닌 것 같다. 먹을만하고, 잘 만든 맛이지만 평냉과 따로 이 수육을 시켜서 먹을 정도의 가치를 느끼진 못했다.
그리고 평냉 위에 올라간 고기와 이 고기의 차이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굳이 사이드메뉴를 시킨다면 수육보다 피순대, 가자미식해가 나았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 돼지향이 강한 이 수육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겨버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매력적인 수육은 아니었다.
이 집의 킥은 평냉이다. 평냉 속에서도 국물이다.
아마도 국물이 기름 동동 떠다니는 걸 보면 국밥 국물이랑 결을 같이 하지 않을까. 그 말은 즉슨 아까 먹은 수육을 만들 때 우려낸 국물이 이 평냉의 원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는 점이다.
국물을 한 입 떠서 먹으면 눅진한 육향이 올라온다. 입안을 가득 메우는 육향이 혀를 사로잡고,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소고기 다시다를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기의 찐함이 느껴진다.
다만 면은 그렇게까지 간이 잘 스며들어있진 않다. 면은 좀 심심한 느낌이고 후추를 쳐서 먹으면 그나마 괜찮아진다.
아니면 고기 고명(또는 수육)을 같이 올려서 먹으면 맛이 좀 살아난다. 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 외에 무김치가 있는데, 그걸 올려서 먹으면 약간의 양념이 스며들어 심심한 평냉을 달래주기도 한다.
어쨌든, 배부르게 냉면과 수육을 먹고 나오면 무더운 여름 햇볕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점심을 먹었으니 커피는 한 잔 해야 하지 않나. 근처에는 카페가 무수히 많다. 조금만 걸어도 있는 카페들을 찾아 커피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켜면 든든하게 점심을 채울 수 있다.
국밥집이지만, 평양냉면과 수육을 파는 희한한 곳. 광화문국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