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광천옥
모름지기 국밥이란 든든함을 필수조건으로 가져야 한다. 든든하지 않으면 국밥이라 할 수 없다. 먹고 나서도 부족하거나 깊은 맛이 혀 안에 남지 않으면 프로국밥러들한테 혼나기 마련이다.
'이북식 국밥'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든든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북식 요리는 상대적으로 심심하고, 허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집을 맛보기 전까진 나도 이북식 국밥이라는 말은 낯설었고, 당기지 않았다.
오늘 소개할 집은 허전할 것 같은 비주얼에도 든든함을 겸비한 '광천옥'이다.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광천옥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이다. 이 식당은 과거 대림국수가 있던 곳으로 사람이 붐비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근처 직장인들에겐 접근성이 좋고, 용리단길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도 쉽게 눈에 들어오는 장소다.
가게는 큰 외관과 다르게 안쪽에 자리가 많진 않다. 대신에 층이 많다. 1층은 식사자리가 없었던 것 같고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2층, 3층이 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이 있는데, 그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면 된다.
이 집은 생각보다 메뉴가 다양하다. 이북식 순대국밥을 메인으로 하면서 무제육비빔밥, 돈복쟁반, 도래창 볶음 등을 판다. 도래창은 사진 속에서 보이듯 간판에도 적혀있는데, 돼지의 장간막을 뜻한다. 돼지 특수부위로 내장에 속하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도래창을 파는 가게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아예 '도래집'이라는 이름의 가게까지 나오면서 알려지는 듯하다.
어쨌든 오늘 이 집에서 먹을 요리는 든든한 이북식 순대국밥(나는 고기국밥)과 함께 냉제육이다. 고기만 나오는 고기국밥은 1만2000원, 냉제육은 단돈 1만4000원이다.
주문 후 자리에 앉아서 물을 홀짝이다 보면 냉제육부터 순서대로 나온다.
이제부턴 고기와 국밥의 시간이다.
이 집의 냉제육은 '육각형 냉제육'이다.
맛, 향, 식감, 가격, 비주얼, 온도까지 모든 걸 두루두루 노멀하게 갖췄다. 빼어난 수준은 아니다. 이 집에 냉제육을 먹으러 와야 한다 정도는 아니지만, 왔으면 냉제육 정도는 시켜 먹을만하다.
우선 맛은 부족함이 없다. 지나치게 달거나 짜지 않고, 적당함을 유지하고 있는 맛이다. 향은 돼지의 육향을 지니되 냉제육 특유의 잡내가 남지 않았다. 식감은 당연히 부드럽다. 냉제육은 쫀득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 쫀득함을 살리면서도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운 축에 속한다.
가격은 앞서 언급했든 1만4000원. 엄청 비싸지도 않고, 그렇다고 양에 비해서 엄청 싸진 않다. 만드는 노력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 가격이면 먹을만한 수준이다. 비주얼은 사진에서도 보이듯 마치 꽃을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이다. 온도는 어떨까. 냉제육은 온도가 생명인데 차갑기만 하지 않고 그렇다고 따뜻함으로 냉제육의 맛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적당히 차고 먹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옆에 나오는 냉제육 소스는 새우젓과 겨자. 같이 먹어도 맛있었고, 그냥 먹어도 괜찮았다.
다음에 오면 편육무침도 한 번 먹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의 국밥은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다. 나온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이렇게 자리 옆에 붙어 있는 '맛있게 먹는 법'을 참고해서 먹으면 맛은 더 다양해진다.
간을 하지 않아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데, 간을 하면 또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밥 전문가가 아니니 국밥에 대한 평은 초보적 수준으로 하겠지만, 이 집의 국밥은 과연 이북식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맛있다.
곰탕 같은 맑은 국물에, 돼지를 베이스로 해서 그런지 찐한 맛이 느껴진다. 거기에 고기까지 이렇게 듬뿍 들어 있으니 물에 담근 고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천국 같은 그런 국밥이다. 든든함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런 맛이다.
광천옥을 나오면 긴 신용산 길이 이어진다. 살짝 꺾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명 용리단길이라고 불리는 번화가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서 카페가 쭉 늘어서있기에 고민하지 않고 후식을 즐기러 가면 된다.
이북식 냉제육과 국밥을 먹으러 가기 좋은 곳, 광천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