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남도집
서울 여의도에는 여러 보쌈집들이 있다. 세호보쌈이나 정우칼국수보쌈 등 오래된 상가에 자리한 보쌈집들이다. 이 집들의 공통점은 꽤 오랜 시간 같은 맛을 유지하면서 주변 직장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색다른, 그리고 맛있는 보쌈집이 있다. 뭔가 경험해 봤을 것 같고 만들기도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경험하지 못했던 이색적인 보쌈. 동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남도집'이다.
남도집은 여의도역보다 샛강역에서 더 가깝다. 샛강역 2번 출구로 올라와서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투다리가 보인다. 그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남도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도집 내부는 자리가 그렇게 많진 않다. 아마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잔뜩 몰릴 것 같다. 애호박찌개나 제육볶음, 청국장 등 점심식사로 적합한 음식들도 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듯하지만 덥다. 에어컨으로도 커버가 안 되는 열기가 있는 탓일까? 선풍기를 틀어도 조금은 더운 감이 있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들여다보면 무척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 애호박찌개와 청국장찌개, 제육볶음, 그리고 오늘 먹을 보쌈. 이렇게 딱 네 가지다.
아니 그런데, 보쌈은 하루 전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큰일이다. 예약을 못했으면 보쌈을 못 먹는 걸까?
다행히 이 집을 예약해 준 지인이 일찌감치 예약과 함께 보쌈 비용을 선입금했다. 매우 감사한 마음이다. 혹시라도 가실 분이 있다면 보쌈을 먹기 위해선 꼭 예약을 하실 것을 추천한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다 보면 밑반찬이 세팅된다. 멸치와 열무무침, 파김치, 명이나물, 새우젓 등 남도 반찬이 잔뜩 깔린다.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니 너무너무 영광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저 참기름에 무친 새우젓은 일품이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먹어봤다고 하는데, 나로선 처음 보는 반찬이기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반찬만으로도 술과 밥을 잔뜩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무려 6만 원에 달하는 이 보쌈은 돈이 아깝지 않을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이 돈 주고 이 보쌈을 먹냐고 한탄하실 수도 있다)
겉을 바싹 태운듯한 이 보쌈은 아마도 한 번 찐 후, 그을렸을 것으로 보인다. 다 자른 다음에 구웠을 리는 없고, 통으로 삼겹을 찐 후 그 상태에서 겉을 태웠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촉촉하게 육즙이 가득한 '겉바속촉' 신개념 보쌈이 탄생하는 것이다.
가끔 보쌈이 덜 익었을 때 프라이팬에 보쌈을 구워서 겉을 익히는 경우를 보곤 했지만(집에서 해 먹을 때), 이렇게 겉바속촉 보쌈으로 음식을 내놓는 식당은 처음 봤다. 그리고 겉바속촉 그대로 보쌈이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내가 바베큐를 먹고 있는 건지, 아니면 보쌈을 먹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육즙을 가득 머금은 이 고기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바삭함으로 다가오지만 계속 씹으면 부드러움으로 변해버리는 기이함을 선사했다.
오겹살의 장점을 잔뜩 살려 육향을 가득 내뿜는 이 고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척 맛있었다. 정형화된 보쌈의 틀에선 살짝 벗어났지만, 변칙을 준 이 고기는 나를 날뛰게 만들었다.
고기만으로 단숨에 내 마음속 최상위권까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맛이었다.
남도집 보쌈의 이면에 대해서 추석이 끝난 주 목요일에 전달해 보겠습니다. 다들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