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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Jan 18. 2024

먹기만 해도 즐거워질 수 있다면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메뉴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수요미식회라는 프로그램은 정말 숨은 맛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집은 요즘으로 치면 풍자의 또간집, 성시경의 먹을텐데처럼 긴 줄이 늘어설 정도였다.


수요미식회는 특정 음식을 주제로 잡고 그 주제에 해당하는 맛집을 3개 정도 추려서 후기를 생생히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중에서도 '보쌈'은 무려 두 번이나 주제로 선정됐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보쌈집들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다. 수요미식회 픽 맛집이라고 소개하진 않았지만, 신성식당이 그중 하나다. 그 외에도 황금콩밭, 가시아방국수, 천짓골은 정말 자주 가고 좋아하는 맛집이다. 특히 천짓골은 다른 글에도 몇 번 등장했던 것 같은데, 보쌈을 정말 사랑하는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육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맛집을 언급하기 전에 수요미식회에 대한 이야기를 주야장천 늘어놓은 까닭이 있다. 이 집은 수요미식회 덕분에 알게 된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집은 수요미식회 맛집으로 알려졌으며 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수요미식회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바로 락희옥이다.


락희옥은 樂喜屋이라는 한자를 쓴다. 즐거울 락, 기쁠 희, 집 옥의 뜻이다. 즐겁고 기쁜 집. 그야말로 음식의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름 그대로 락희옥은 여러 안주와 술을 메뉴로 선사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무엇보다 콜키지가 프리다. 안주 가격은 조금 나가더라도 콜키지가 프리이기 때문에 술과 음식을 조화롭게 즐기기 참 좋은 곳이다.


락희옥은 분점이 두 곳 더 있다. 을지로와 교대인데, 나는 주로 마포본점이나 서초교대역지점을 방문했다. 빈도로 따지면 서초교대역이 더 잦았는데, 두 지점의 맛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분위기나 서비스, 인테리어도 비슷했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 소개할 마포본점이 좀 더 천장이 높아서 넓고, 시끄럽고, 산만한 분위기이긴 하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점원이 보쌈 고기를 잘라주고 있다.

락희옥 마포본점은 공덕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보인다. 경의선 숲길 근처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통유리로 돼 있는 가게 외관은 얼마나 이 집이 인기가 많은지 보여주는 창구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여러 사람이 앉아서 떠들며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자리에 앉으면 음식이 적힌 메뉴판, 술이 적힌 메뉴판, 세트메뉴가 적힌 메뉴판, 이벤트성 위스키를 파는 메뉴판 등을 점원이 준다.


집의 메뉴는 정말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보쌈'이 제일이다. 그래서 보쌈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육회나 육전도 유명하고, 김치말이국수가 식사 메뉴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보쌈을 시키면 배추와 찍어먹을 된장 등이 자리에 깔린다. 음식은 정말 금방 나온다. 만약에 이 집에서 음식을 시켰는데 나오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 불러서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람이 많고 정신이 없어서 주문이 들어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꽤 정갈하게 직사각형 그릇에 보쌈이 담겨 나온다. 친절하게도 통으로 나온 고기를 점원이 하나하나 잘라서 준다. 조금만 기다리면 행복의 순간이 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보쌈 고기의 모습

락희옥 고기의 부위는 보기 드문 '오겹살'이다. 오겹살 자체가 쓸데없이 프리미엄이 붙어서 비싸졌기에 꽤나 수육으로는 보기 드문 부위이긴 하다.


하지만 오겹살만큼 수육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부위도 없다. 비계와 살코기의 조화, 거기에 껍데기라는 식감까지 겹쳐서 짜릿한 맛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일단 썰어져서 나온 고기의 표면만 봐도 얼마나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는지 알 수 있다. 대충 만들어도 맛있을 것 같은 오겹살이다.


그런데 이 집은 대충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난 노하우가 숨겨져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고기 자체의 맛이 훌륭하다.


이 집의 고기는 일반 주점에서 먹을 수 있는 보쌈의 차원이 아니다. 보쌈전문으로 차려도 될 정도의 퀄리티다. 부드럽고 또 부드럽다. 쉽게 질길 수 있는데도, 이 집의 고기는 쉽게 질겨지지 않는다. 오래 담가놓지 않고 회전을 빨리빨리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언제 어떻게 고기를 꺼내고 썰어서 팔아야 할지를 아는 사람이 만든 것 같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김치

김치는 세 가지 종류가 나온다. 소금에 절인 배추, 일반 배추 겉절이, 무김치.


각각을 평가하자면 소금에 절인 배추는 단독으로 먹기에는 굉장히 짜다. 아마 고기와 같이, 그리고 무김치를 넣어서까지 먹으라는 의미로 보인다. 흰 배추에 고기를 얹고, 무김치를 같이 싸서 먹으면 맛의 조화는 꽤 괜찮은 편이다.


일반 김치는 아마도 김치말이국수의 베이스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젓갈의 향이 살짝 나고 식감도 아삭하다. 이 김치는 단독으로 고기를 싸 먹어도 부족하지 않다. 나쁘지 않은 맛이다.


무김치는 쓴맛은 덜하다. 하지만 양념이 부족한 느낌이다. 역시 흰 배추에 싸서 먹으라는 의미 같다. 가끔 느끼함이 덜할 때쯤 고기랑 무김치만 따로 먹어도 지장은 없다. 하지만 완벽한 맛은 아니다.


김치는 전반적으로 조금씩 부족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늘 말하는 것이지만 고기와의 조화가 중요하다. 어쩌면 일부러 김치를 부족하게 만들어서 고기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아닐지. 나만의 생각이다.


그만큼 이 집의 고기와 김치는 조화롭고, 그렇게 합쳐진 보쌈은 전문점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육회

이 집이 보쌈만 전문으로 다루지 않는 이유는 아마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일까. 콜키지 프리에 보쌈만 판다고 했을 때 지금만큼 인기가 있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는다.


다행히 이 집은 보쌈 말고 다른 음식들도 정말 전부 다 맛있다. 우선 자주 찾는 육회는 우리가 평소에 먹던 갈아 나온 듯한 고기가 아니라 사각사각 썰린 고기가 나온다. 소금이랑 통후추로 간을 했는데 정말 맛있다. 배도 큼직하게 썰어서 시원한 맛을 가미해 준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육전

육전도 훌륭하다. 일단 밀가루가 과하지 않다. 고기의 질도 뛰어난 것 같다. 씹히는 맛이 부드럽고 잡내는 없다. 소스도 지나치지 않다. 파채와 함께 소스를 살짝 얹어서 먹으면 한입에 쏙 들어간다. 만약 조금 드라이한 레드와인을 가져와서 먹는다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맛이다.


김치말이국수는 솔직히 말하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소면이랑 국물이랑 따로 노는 느낌이다. 하지만 김치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국물의 맛은 뛰어나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국물을 해장하듯이 먹으면 좋다.


장점만 있다면 이 집은 전국구 맛집이 됐겠지. 하지만 단점도 많다.


우선 가격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물가가 올라서 오른 것도 아니고 원래 비쌌다. 보쌈 단품이 300g에 4만5000원이다. 다른 대표 메뉴들도 3만원은 기본으로 넘어간다. 김치말이국수가 1만원인데 반찬까지 나온다는 점이 그나마 가성비가 좋게 느껴질 정도다.


양도 많지 않다. 비슷한 말인데, 가격은 비싸지만 양이 적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이 부분은 맛으로 커버가 되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아니다.


화장실이 밖에 있다. 경의선 숲길 옆 상가에 있는 가게들의 공통점인데 화장실이 밖으로 나가서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있다. 그래서 겨울에는 추울 수 있고, 여름에는 번거롭고 더울 수 있다.


락희옥이 너무 비싸서 부담스럽다면 보쌈을 즐기고 근처 2차를 할 수 있는 가게로 옮겨보면 어떨까. 근처에는 꽤나 멋진 경의선 숲길 주변 와인바나 이자카야, 포차 등 술집들이 많다.


비싸도 락희옥은 먹을만하다. 고기가 정상급이고, 다른 안주들도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먹다 보면 정말 즐겁고 기쁘다. 이름 그대로.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보쌈집, 락희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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