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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Feb 23. 2024

고기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류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류벽 메뉴판

고기를 맛있게 하는 보쌈, 수육집을 만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긴다. 이런 경우 그 음식점의 사장님이 돼지고기에 진심일 때가 많다. 고기를 삶을 때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보쌈을 좋아하지만, 그리고 삶은 고기를 만날 때마다 반가워하지만, 그런 노하우가 있지는 않다. 여러 번 고기를 삶을 여유도 없었거니와, 경지에 다다를 만큼 내 실력이 뛰어나지 않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만의 돼지고기를 삶는 노하우가 생기겠지만, 지금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돼지고기를 맛있게, 매번 크게 다르지 않은 맛과 부드러움으로 만드는 음식점을 보면 감탄스럽다. 심지어 여러 부위를 그렇게 만드는 곳이 있다면 감사하기까지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쌈집이 장수보쌈과 천짓골인 것도 고기에 그만큼 진심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집도 그런 곳이다. 고기에 진심을 다하고 애정을 보여주는.


강남역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면 맛집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다. 거기서 거기인 음식점들이고, 프랜차이즈가 즐비해서 색다른 곳을 찾기가 어렵다. 오늘 소개할 집은 약간의 트렌디함과 신박함을 겸비한 곳이다. 바로 청류벽이다.


청류벽은 강남역 신분당선역 5번 출구로 나오면 3분 거리에 있다. 상가들 사이에 껴 있어서 찾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지도를 보고 가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앞뒤로 입구가 있다. 앞쪽 입구로 가면 웨이팅을 확인할 수 있다.


청류벽은 입장과 동시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가 굉장히 (1980년대에 안 살아봤지만) 1980년대 음식점스럽다. 하지만 진짜 오래돼서 생긴 1980년대 느낌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전통을 유지하는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최근 생긴 곳 같다.


자리에 착석하면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메뉴판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예스러움이 있다. 노포, 옛날 식당을 좋아하는 내게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메뉴판을 쓱 훑어보면 신기한 메뉴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제복쟁반이다.


제복쟁반? 어복쟁반이랑 비슷한 이름이지만, 낯설기만 하다. 옆 테이블에서 먹는 걸 종종 봤는데, 내가 주로 시키는 보쌈에다가 소고기 수육이 얹어서 나오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순대가 나오나, 돼지 내장이 나오나 했는데 소고기 일부 부위가 함께 나온다.


소고기 수육도 사랑하지만, 가격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래서 보쌈을 시킨다. 보쌈에다가 들기름 막국수나 감자전 등 사이드 메뉴를 시키면 3~4명이서 먹기에는 적당하다.


보쌈 식사의 장점. 시키면 금방 나온다. 이곳 역시 그리 늦지 않게 나온다. 정갈하게 썰어진 고기와 여러 종류의 김치가 큰 쟁반에 담겨서 식탁에 자리한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류벽 보쌈

이 집이 고기에 진심이라고 느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이 집은 부위를 한 곳만 쓰지 않는다. 삼겹살, 갈매기살, 앞다리살 등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다. 장수보쌈이 항정살, 앞다리살 등을 함께 사용하는 것처럼. 그리고 각 부위의 특징에 맞게 삶는 시간을 다르게 한다고 한다. 고기에 대한 연구가 깊게 이뤄졌다는 증거다.


또 다른 이유는 고기가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평일 점심에 가면 수육을 시킬 수가 없다. 그것도 모르고 처음에 갔다가 보쌈을 못 먹는다는 말에 그냥 나온 적이 있었다. 주말에는 11시 30분에 고기가 나오지만, 주중에는 오후 3시 이후에 고기가 나온다. 정해진 시간에 최상의 맛을 유지하겠다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이 집의 고기는 '무리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고기에 진심인 다른 보쌈집들만큼 눈이 트일 신박한 맛은 아니다. "아 진짜 이 집 고기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느낀다.


그래도 이 집의 고기는 훌륭한 편이다. 우선 삼겹살의 비계 부분은 상당히 부드럽다. '비계가 당연히 부드럽지 무슨 소리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녹아서 없어지는 비계가 아니라 적당히 식감이 있는 비계다. 아쉬운 건 살코기 부분이 상대적으로 질기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편이지만, 살코기의 딱딱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나 고기가 큼직하고 두껍게 썰려있어서, 질김이 오래 느껴진다면 살짝 아쉽다.


앞다리살은 상당히 부드럽다. 그래서 입에서 녹는 편이다. 식감도 나쁘지 않다. 고기에 꽤나 심혈을 기울인 게 여기서 느껴진다. 부위가 다른 데도 각자의  맛이 살아있다니. 사장님이 분명히 고기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퀄리티가 상당하다.


김치는 보쌈의 정석은 아니다. 그러나 맛은 꽤 있다. 무말랭이는 큼직하게 썰어서 나오는데, 그만큼 고기와 한 덩이로 싸 먹기 좋은 크디가. 배추김치는 겉절이보다는 익은 김치에 가깝다. 이것 역시 큼직한데 편이데 고기와 잘 어울린다.


이 집의 포인트 김치는 파김치다. 꽤나 달짝지근하면서도 새콤하다. 고기에 얹고, 무말랭이나 배추김치를 같이 곁들인다면 꽤 맛있다.


하지만 김치가 최상위권은 아니다. 플레이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집의 김치는 고기의 무대를 꾸며주는 백댄서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간을 강하게 하지도 않았고, 젓갈이 세게 느껴지거나 고기를 덮는 느낌은 없었다. 고기를 돋보이게 하고, 고기를 살려주는 맛이다.


훌륭한 편인 돼지고기와 백댄서 김치가 만나는, 나름대로 먹을만한 보쌈 맛집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류벽 배달 한상

청류벽은 최근 배달을 개시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행복한 소식이다. 이렇게 퀄리티 있는 고기를 집에서 배달로 즐길 수 있다니. 굳이 어렵게 줄 서서 먹을 필요가 없다.


청류벽이 고기 못지않게 진심인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들기름 막국수다. 이 집은 직접 들기름을 뽑는 공간이 있을 정도로 들기름에 진심이다. 그만큼 들기름 막국수의 맛도 괜찮다. 들기름 막국수에 고기를 싸서 먹으면, 행복함이 밀려온다.


감자전도 바삭하니 맛있다. 밀가루나 전분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술에 곁들이기 딱 좋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이 집은 육개장도 꽤나 맛있다고 한다.


청류벽은 환상적인 매력을 두루 갖춘 곳은 아니지만, 무난하게 각각의 매력을 지닌 곳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축구선수에 비교하면 손흥민이나 이강인처럼 빼어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구자철처럼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해주는 느낌. 아이돌에 비교하면 동방신기나 원더걸스처럼 당대 최정점을 찍은 그룹은 아니지만, SS501과 소녀시대처럼 멤버들이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그룹 같은.


그 매력들 중에서도 이 집이 좋은 이유는 '고기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고기에 진심인 곳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집의 고기는 점점 더 맛있어지는 것 같다. 재작년에 갔을 때랑, 작년에 갔을 때, 그리고 올해 먹었을 때 이 집의 고기는 점점 더 맛있어진다. 앞으로 먹을 고기들은 얼마나 더 괜찮아질지 기대되는 곳이다.


고기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만들어질 수 있는 보쌈집, 청류벽이다.


*최근 치아 건강 이슈로 고기와 김치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판단되어 연재가 한 주 늦어졌습니다. 제대로 맛을 느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치아 건강을 얼른 회복해보겠습니다. 스스로와의 약속대로 목요일마다 신선한 글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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