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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May 02. 2024

우리는 제주도 보쌈집에서 만났다

제주도 서귀동 천짓골식당, 첫 번째 이야기

무더운 여름. 아끼던 파란색 반팔티를 입은 나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몇 달간 이어진 아르바이트, 학업의 병행을 끝내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제주를 찾기 위해서였다.


제주는 내게 소중한 곳이다. 아프고 힘들 때 위로가 됐던 사계해안, 조용히 음악을 듣고 누워있던 표선 바닷가, 시골집 같은 정겨움을 준 무명화가의집이 있던 성산. 곳곳에 나의 추억이 있고 기쁨이 있는 곳이다.


힘들 때면 제주를 찾았다. 2019년 그해 여름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제주를 찾았다.


제주를 찾기 전 여러 인연과의 상처로 아픔을 겪었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뭘 그렇게 애쓰냐고. 그렇게 애썼던 인연들은 다 나를 떠났다. 가장 친했던 친구는 내게 등을 돌렸고, 사랑했던 사람도 나를 떠났다. 떠났기에, 나도 떠나야만 했다.


'모든 걸 내려놓자. 그래야 내가 행복해지니까'라는 마음으로 왔던 제주에서는 잡생각이 여전히 나를 지배했다. 어린 나이에, 없는 돈을 쥐어짜 내 호텔을 예약했다. 게스트하우스만 전전하던 내게 호텔은 생소했지만, 아르바이트로 고생한 내게 주는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떠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는 눅눅했다. 비가 왔고 습기가 찼다. 무거운 짐까지 내 어깨를 누르고 있어서 힘이 들었다. 아무렴 어때. 이런들 저런들 제주니깐. 나를 행복하게 만들 제주니깐.


공항을 떠나서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니 피곤이 가셨다. 피곤이 가셨으면 찾아오는 건 배고픔. 밥이 나를 불렀다.


제주에 오면 내가 꼭 찾는 식당이 있다. 바로 천짓골식당이다. 숙소는 제주시, 천짓골식당은 서귀포시. 먼 길을 떠나야 했지만, 그래도 꼭 가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수육을 팔기 때문이다.


하루에 1만원꼴 하는 렌터카를 빌렸다. 40분을 넘게 달려야 도착하지만, 맛있는 수육을 먹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오랜만에 도착한 천짓골식당에는 유명세 때문인지 긴 줄이 있었다. 조금 기다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줄에 합류했다.


혼자 먹어야 하는데. 나름 혼밥을 잘하고 제주에서는 자주 혼밥을 했지만, 보쌈 한 덩어리를 혼자 먹는 건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혹시 누가 있을까. 긴 줄에서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을 찾아봤다.


'설마 있을 리가'라는 생각으로 뒤를 돌았는데, 그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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