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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Jul 18. 2024

다시 우리가 만났던 제주도 보쌈집

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에필로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났고 우리는 각자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어느 연인이 그랬든 우리는 이별 후에 서로를 잊지 못했다. 좋았던 시절만 남아 그 시간을 그리워했고 때로는 술에 취해 서로를 애타게 찾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다. 우리의 그리움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도 나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 각자의 삶이 익숙해졌다. 아니,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각자의 삶에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가끔 그 사람과 함께 갔던 보쌈집을 찾을 때면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그때를 곱씹기도 했고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계절이 몇 번은 지났을까. 이제는 생각이 안 나겠지. 이제는 괜찮겠지 할 때쯤 그 사람은 점차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정말로 좋은 기억들만, 아름답고 그리운 기억들만 남았다. 열렬히 좋아했고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몇 차례의 계절이 지나 또 다른 여름이 왔고, 또 다른 가을이 왔고, 계절의 흐름을 몇 번쯤 지났을 때 내게 남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더 아름답게 변모했다. 우리의 시작은 영화처럼 아름다웠고 우리의 끝은 그렇게까지 격렬하지 않았으며 헤어짐의 이유도 내게서 희미해졌다. 우리의 감정은 분명히 달라졌고 서로를 미워했음에도 내게 남은 기억은 그렇게 행복으로만 남았다.


그렇다고 아름다움만 남은 그 기억이 틀렸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좋지 않은 기억이 시간으로 덮이면서 좋은 기억들만 내게 남은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충분히 좋았지만 불같은 시기에 만나 불같이 사랑했고 그 불이 너무 뜨거워서 금방 꺼진 거라고. 나의 미화 아닌 미화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 시간들을 지내면서 내 기억은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관철됐다. 그립다고 생각하니 그 마음은 더 강해졌다. 그럴 때면 주변에서 친구들이 나를 말렸다. 그리워해봐야 소용없다고. 다시 찾아가도 그 사람은 아무 감정도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의 그리움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힘든 취업 준비 시기를 지나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조그만 스타트업이었지만 성장세가 나쁘지 않았고 꽤 긴 시간을 휴가로 쓸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코로나19라는 지난했던 시기가 끝난 시점에 많은 사람이 그 긴 휴가를 해외여행에 쓰곤 했지만, 나는 해외를 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제주도가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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