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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Jul 11. 2024

뜨거웠던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서울 성수동 훼미리손칼국수보쌈, 마지막 이야기

우리는 색다른 조합을 찾았다는 기쁨으로 보쌈을 먹었고 수많은 우리의 대화를 만끽했다.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서로에 대해 조금은 더 알아간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을까. 그 사람이 먼저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더운 공기에도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우리는 방금 먹은 성수동 훼미리손칼국수보쌈에 대해 본인의 감상을 다시 나눴고 다음에는 어떤 보쌈을 먹으러 갈지 이야기했다. 을지로로 가볼까요. 용인으로 가볼까요. 제가 아는 곳이 하나 있는데요.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시시콜콜했지만 그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문장의 거름 없이 질문을 뱉어봤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떻냐고. 


“글쎄요. 그냥 행복해요.”


행복하다는 말이 그 사람 입에서 나오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사람은 본인의 말에 부연이 필요했던 듯 말을 이어나갔다.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해지거든요. 그런데 맛있는 걸 좋은 사람이랑 먹으면 더 행복해요. 그리고 맛있는 걸 좋은 사람이랑 먹으면서 다음에는 또 어떤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 생각하면 더 행복해지고요. 최고로 행복한 건 그 사람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죠. 좋은 사람이랑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걸 먹으면서 또 어떤 맛있는 걸 먹을지 같이 고민하는 순간.”


주저리주저리 행복에 대해 강연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맛있는 걸 먹고 또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우리는 떠들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나는 확신했다. 

글 내용과 무관하게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걷고 또 걷다가 더위가 가득 찼을 때쯤 우리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마주쳤고 또 배시시 웃어버렸다. 카페에서 몇 시간의 담소를 더 나누고 해가 질 때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2019년의 여름, 우리가 성수동에서 나눴던 대화들은 그렇게 여름 공기 속에 뜨겁게 남아있었다.     


몇 번의 만남이 더 이어졌을까. 우리는 또 다른 보쌈집을 찾아갔고 고기와 김치에 대한 감상들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감정에 대한 감상까지 공유했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는 나를 좋아하고. 그런 단순한 말들이 겹겹이 쌓여서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다.     


수많은 보쌈집을 그 사람과 함께 다니면서 우리는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싸우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하하 호호 웃다가 갑자기 싸우기도 했다. 왜 싸웠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서울 성수동 훼미리손칼국수보쌈 보쌈정식(구독자 사진 제공)

다시 성수동 훼미리손칼국수보쌈을 찾은 건 세 번의 계절이 지난 2020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만난 지 1년쯤 됐을 때 오랜만에 그곳을 찾자고 제안한 건 그 사람이었다.     


1년 사이에 우리도 그곳도 많이 변해있었다. 가는 길은 무더운 공기가 더욱 느껴졌고 들어간 공간에는 1년 전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칼국수는 늦게 나왔고 보쌈은 퍽퍽하게 느껴졌다. 웃고 떠들고 행복했던 우리는 고기와 김치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서로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 없이 침묵으로 이어졌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느끼고 있었다. 이미 많이 달라졌다는 걸.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보였던 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한 우리는 그렇게 다음 계절을 함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가 함께한 여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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