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에필로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났고 우리는 각자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어느 연인이 그랬든 우리는 이별 후에 서로를 잊지 못했다. 좋았던 시절만 남아 그 시간을 그리워했고 때로는 술에 취해 서로를 애타게 찾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다. 우리의 그리움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도 나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 각자의 삶이 익숙해졌다. 아니,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각자의 삶에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가끔 그 사람과 함께 갔던 보쌈집을 찾을 때면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그때를 곱씹기도 했고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계절이 몇 번은 지났을까. 이제는 생각이 안 나겠지. 이제는 괜찮겠지 할 때쯤 그 사람은 점차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정말로 좋은 기억들만, 아름답고 그리운 기억들만 남았다. 열렬히 좋아했고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몇 차례의 계절이 지나 또 다른 여름이 왔고, 또 다른 가을이 왔고, 계절의 흐름을 몇 번쯤 지났을 때 내게 남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더 아름답게 변모했다. 우리의 시작은 영화처럼 아름다웠고 우리의 끝은 그렇게까지 격렬하지 않았으며 헤어짐의 이유도 내게서 희미해졌다. 우리의 감정은 분명히 달라졌고 서로를 미워했음에도 내게 남은 기억은 그렇게 행복으로만 남았다.
그렇다고 아름다움만 남은 그 기억이 틀렸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좋지 않은 기억이 시간으로 덮이면서 좋은 기억들만 내게 남은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충분히 좋았지만 불같은 시기에 만나 불같이 사랑했고 그 불이 너무 뜨거워서 금방 꺼진 거라고. 나의 미화 아닌 미화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 시간들을 지내면서 내 기억은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관철됐다. 그립다고 생각하니 그 마음은 더 강해졌다. 그럴 때면 주변에서 친구들이 나를 말렸다. 그리워해봐야 소용없다고. 다시 찾아가도 그 사람은 아무 감정도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의 그리움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힘든 취업 준비 시기를 지나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조그만 스타트업이었지만 성장세가 나쁘지 않았고 꽤 긴 시간을 휴가로 쓸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코로나19라는 지난했던 시기가 끝난 시점에 많은 사람이 그 긴 휴가를 해외여행에 쓰곤 했지만, 나는 해외를 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제주도가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