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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Aug 29. 2024

문래동 끝자락에서 찾은 보쌈집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토방골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토방골 전경

몇 년 전부터 문래동은 공장이 아닌 최신 맛집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SNS에 사진으로 등장하는 식당들이 즐비했고 술집들은 저마다 MZ세대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곳으로 가득 찼다. 문래창작촌은 MZ의 핫플이 됐고 밤이 되면 시끄러움으로 가득했다.


그런 문래의 끝자락에 28년간 자리해 온 보쌈 맛집이 있다. 문래역에서 창작촌 방향이 아닌 3번 출구로 나가면 횡단보도가 나온다. 그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토방골이 등장한다.


토방골은 간판부터 오래된 냄새가 난다. "여기는 찐이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간판이다. 게다가 보쌈, 파전, 막걸리. 이 세 단어가 한 줄에 쓰여있다니.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 내음이 물씬 난다. 냄새 배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당장 문을 다시 닫고 나가고 싶긴 하지만, 전 굽는 기름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발걸음을 인도하는 냄새다.


냄새가 싫지만 꾹 참고 보쌈을 맛보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간다. 2층으로 가도 되고 1층에 앉아도 된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토방골 전경

이 집은 메뉴를 고민하지 않게 만든다. 적어도 보쌈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무슨 00보쌈 이렇게 팔지 않는다. 그냥 보쌈(국내산)이다. 소, 중, 대로 사이즈가 나뉘어 있는데 뒤에서 말하겠지만 이 집의 고기 부위를 생각하면 넉넉하게 중, 대로 시키는 게 낫다.


앉아서 보쌈을 시키고 기다리면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큰 그릇에 담긴 고기와 김치가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토방골 보쌈 中의 일부 모습(아랫부분 고기가 비어있음)

토방골의 고기는 쫄깃함이 살아있다. 집의 고기는 가브리살을 사용한다. 그래서 양이 많지 않다. 그래도 고기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우선 처음 혀와 닿았을 때 토방골의 고기는 달달한 맛이 느껴진다. 씹다 보면 쫀득함이 잔뜩 느껴진다. 씹는 맛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질기지 않다. 살코기가 부드러운데 식감은 살아있는, 그런 맛이다.


육향은 어떨까. 훌륭하다. 가브리살 수육의 특징은 살이 얇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충분히 육향을 품고 있다. 잡내는 전혀 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가브리살이기 때문에 그 식감을 맘껏 즐기기 힘들다는 점이다. 두 점씩 먹기에는 양이 적고, 결국 고기 추가는 필수가 된다. 고기 추가가 '메뉴'에 자리한 이유가 그런 탓이 아닐까 싶다.


된장베이스로 추정되는데 약간의 간장맛도 났다. 짭조름하면서 달달함이 겸비된 게 어떻게 잡내를 잡고 육향은 남겼는지 궁금해지는 맛이었다.


고기와 달리 김치는 평범했다. 배추김치의 경우 양념이 덜 밴 느낌이 있었다. 아무래도 날마다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조금만 더 숙성됐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무김치는 양념이 잘 배어 있었다. 김치는 과일로 단맛을 낸 느낌이었다. 설탕의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단맛이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고기와 김치가 만났을 때 조화도 멋들어졌다. 고기 자체가 일품이다 보니 김치는 자연스러운 조연으로 남았다.


쫄깃함을 계속해서 즐기고 싶은, 그런 보쌈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토방골 파전

고기를 먹는 내내 옆에서는 전을 굽는 냄새가 심각하게 퍼져왔다. 냄새 배는 걸 싫어하는 내겐 고역이었지만 일행들은 그 냄새를 맡더니 전을 시켜 먹자고 제안했다.


이 집을 추천해 준 사람의 말로는 이 집에서 보쌈보다 파전이 더 맛있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우선 나는 바삭바삭한 전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파전이다 보니 내용물이 많아 바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용물이 특별히 뛰어났는가. 또는 내용물의 맛이 유별났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그렇다"라고 쉽게 대답하긴 어려웠다.


이미 배부른 상태였다는 점이 영향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파전이 보쌈보다 맛있다'는 말에 선뜻 동의할 정도로 파전이 특출 나지는 않았다.


보쌈의 고기 맛에 좀 더 집중한다면 보쌈의 맛을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추천해 준 사람을 다시 데려가서 가브리살 보쌈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하면서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 그래도 집의 파전은 안주거리로 먹기에 나쁘지 않은 맛이다.


배부름을 가득 안고 문을 열고 나오면 한산한 문래동 끝자락이 펼쳐져있다. 문래창작촌으로 걸어가도 되고, 영등포구청역으로 살살 걸어가며 소화시켜도 되고 인근에 2차를 갈 곳은 즐비해있다. 행복하게 도로를 걸어가며 토방골을 되새기면 미소가 나온다.


문래동 끝자락에서 찾은 보쌈집, 토방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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