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서귀동 천짓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꼽는 1등 맛집이 있기 마련이다. 가장 맛있는 집, 또는 가장 좋은 추억이 있던 집. 특히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집. 맛도 있고 깨끗하고 서비스도 좋고 가격도 좋은 그런 집.
내게도 그런 집이 있다. 추억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고 서비스도 좋은. 인생 최고의 맛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항상 첫 번째로 튀어나오는 그런 곳. 바로 천짓골이다.
천짓골은 브런치스토리에 처음 등장하는 집은 아니다.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 언급이 됐었는데 천짓골은 내게 '고기'의 기준이 되는 집이기 때문이다. 천짓골 고기보다 잘 만든다면 정말 대단한 곳(아직은 못 봤다), 천짓골 고기 수준보다 조금 아쉽다면 훌륭한 곳, 천짓골 고기보다 맛없으면 평범한 곳. 뭐 그런 정도다.
이 집은 서귀포시 한복판에 있다. 그래서 제주시에만 머무르는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통 월정리, 애월 쪽으로 여행들을 많이 가기 때문에 아무리 추천해 줘도 천짓골까지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제주시내에 숙소를 많이 잡기 때문에 천짓골을 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천짓골 주변에는 공영주차장이나 무료주차장이 여럿 있는데, 혹시라도 차를 끌고 왔다면 잘 찾아보고 주차를 하면 된다. 어렵지 않게 주차한 후 가게로 가면 5시 오픈 때는 웨이팅이 있을 수 있다. 웨이팅을 걸어놓고 다른 곳을 다녀와도 되고 아니면 아싸리 애매한 시간에 가게를 찾아 웨이팅 없이 먹으면 된다.
가게 내부는 과거 좌식이었는데 몇 해 전 의자가 생기면서 입식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좀 더 깔끔해졌고 오래 앉아 먹기도 불편하지 않다.
테이블은 적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18개 정도 테이블이 있는 것 같다. 혼자서 가도 먹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다. 다만 300g 주문은 추가 주문 때만 가능해서 혼자서도 600g을 시켜서 먹어야 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300g만 시켜서 먹으면 맛이 없기 때문에 600g 다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메뉴는 초간단이다. 두 가지로 나뉜다. 흑돼지 아니면 백돼지.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흑돼지보다 백돼지를 추천한다. 흑돼지가 더 야들야들하고 맛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늘 그렇진 않다. 어느 날은 백돼지가 더 맛있기도 하다. 사실 흑돼지와 백돼지의 큰 차이도 없다. 제주도민들은 흑돼지를 먹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다. 바깥 살색만 다르고 안에는 똑같기 때문이다. 굳이 비싼 돈 내고 흑돼지 먹을 정도의 메리트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집의 재밌는 점 또 하나는 고기의 부위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살코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거나 비계가 많은 부분을 선호한다면 요청할 수 있다. 둘 다 먹어보고 싶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모가 다른 테이블의 고기를 썰어서 한 점씩 교환시켜 준다.
고기를 시키면 반찬이 세팅된다. 이 집은 찬도 맛있다. 순두부와 어묵볶음, 김치, 양파무침, 콩나물 등이 나오는데 반찬을 미리 다 먹어버리면 나중에 고기가 나왔을 때 문제가 생기니 유의해야 한다. 순두부와 어묵볶음 정도는 미리 먹어도 지장이 없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따뜻한 육수가 담긴 물이 나온다. 이 물은 이 집의 센스 있는 비법이다. 그리고 도마에 실린 큼직한 오겹살이 담겨 나온다. 썰리지도 않은 채로.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이 집의 고기는 내가 감히 쉽게 평가할 수가 없다. 고기의 최상위권에 있는 집이다.
단 한 번도 이 집을 지인에게 소개해줬을 때 실망한 사람은 없다. 물론 누군가는 이 집이 변했다고 말하거나, 생각보다 맛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 주변에는 없었다.
이 집은 고기의 정석, 고기의 모든 걸 담고 있다. 고기가 맛있기 위해서는 고기 질 자체가 좋아야 한다. 이 집은 무조건 좋은 고기를 쓴다고 확신한다.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기 때문이다.
고기의 잡내를 잡기 위한 잡다한 것들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솔직히 그냥 물로만 삶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고기맛만 남아있다. 고기의 기름이 빠져나와서 만든 감칠맛과 단향, 쫄깃함이 한 데 어우러져 도파민이 쏟아져 나오게 한다.
이 집은 마늘과 생강을 넣지 않았다. 마늘과 생강을 넣으면 간이 강해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된장과 커피도 넣지 않았다. 색깔이 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파 역시 넣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넣은 걸까?
이 집 고기는 이모가 조금씩 썰어서 준다. 돔베고기의 정석이기도하다. 그리고 썰지 않은 고기는 잠시 옆에 나온 물에다가 담가둔다. 이 물을 먹어봤는데 정말 고기 특유의 향 말고 아무런 간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고기를 물로만 삶은 느낌이었다.
여러 재료를 넣지 않고도 고기를 훌륭하게 만들려면 분명히 뛰어난 고기를 쓸 것이고, 본인들만의 비법이 있을 것이다. 무척이나 알고 싶은 비법일 정도로 고기의 맛은 사람을 녹아내리게 한다. 글을 쓰면서도 생각날 정도로 지상 최고의 고기임이 틀림없다.
이 집 고기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맛이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곧 고기의 생명. 그런 의미에서 이 집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것 같다. 제주도가 원래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은 고기를 고기 삶은 물에다가 다시 담가놓는다.
사실 고기를 물에 오래 담가두면 고기에 있던 육즙이 빠져나가서 오히려 고기가 퍽퍽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집 고기는 육즙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그 비결이 뭔지도 궁금하다. 빠져나가지 않게끔 고기 내의 압력을 유지하는 무슨 비법이 있는 걸까? 아무래도 고기 자체가 가진 육즙의 양이 상당하게 만들기 때문에 고기가 제 모습을 끝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집의 엑스트라다. 바로 몸국이다. 고기를 어느 정도 먹을 때쯤 서비스로 제공된다.
이 집의 몸국은 심플하다. 조미료 같은 게 들어가 있지 않고 국물의 깊은 맛만 남아있다. 고기를 먹다가 느끼해질 때쯤 몸국을 한입 먹으면 느끼함을 좀 잡아준다. 그래서 몸국이 곁들임으로 제격이다.
이 집의 고기를 먹는 방법도 특이한데 이모가 알려주는 순서대로 먹고 본인이 맘에 드는 걸 골라 먹으면 된다. 양파와 함께 먹고, 소금에 찍어 먹고, 마늘과 김치를 함께 먹고. 어떻게 먹어도 다 맛있다.
배불리 먹고 나오면 다시 또 가고 싶어 진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하지만 혼자서 600g을 다 먹는 건 비추천이다. 느끼함이 언젠가는 몰려오기 때문이다. 둘 또는 셋이 가서 맛있게 먹기 딱 좋은 정도의 느낌.
이 집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한결같은 맛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지구 어디에 내놓아도 꿇리지 않을 수육 퀄리티다.
최고의 고기가 있는 맛집, 제주 천짓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