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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중 May 12. 2021

피에 젖은 땅 - 티머시 스나이더

제2차 세계대전 중 1400만명 민간인 학살의 기록

 돌이켜보면 전 학부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듯합니다. 최근에 학부 성적표를 다시 볼 일이 있었는데, 같은 교수님한테 ‘20세기 세계사’와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라는 과목을 들은 기록이 있더군요. 역사의 여러 시기 중에서도 20세기에 유난히 더 많은 관심이 많았는데, 혁명과 전쟁이 많은 흥미로운 시대라서 그럴까요. 그러한 사건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대답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이번에 읽은 책 ‘피에 젖은 땅’을 어떻게 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20세기 세계사 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 전쟁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지만, 이 책은 동시기 전쟁사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난 후엔 꽤나 두꺼운 책임에도 잘 써서 그런지 읽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크게 3가지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첫째는 왜 과거의 비극적인 학살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둘째는 당시 학살들이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에 대한 고찰, 셋째는 이러한 기록으로부터 오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입니다. 




1. 14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 학살의 기록들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에 소련과 나치 독일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다룹니다. 특히 제목인 ‘피에 젖은 땅’은 당시 학살이 일어났던 동유럽 지역 -오늘날의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 을 의미합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설명을 위해 약간 등장하기도 하지만, 주된 관심사는 오로지 전쟁과는 크게 상관이 없던 민간인 학살의 이야기이죠. 총 1400만 명의 민간인이 그 시기에 학살당했다고 알려집니다. 

 1400만 명의 죽음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책에선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왜 굳이 이 비극적인 사례들을 읽어나가야 할까요. 저자는 그 이유를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제시합니다.


12년, 두 체제 동안 1400만명이 의도적 살육을 당했다. 지금은 이에 대해 우리가 통달은 못 할 망정 조금이라도 알기 시작할 때다. 과장된 숫자를 반복하며, 유럽인들은 그들의 문화에 수백만명의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을 집어넣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유령은 완전히 무력하다. 서로 경쟁적인 순교자 신화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순교자를 내세운 제국주의일 뿐이다. 1990년대의 유고 내전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민족의 희생자 수를 실제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역사가 없어지면, 숫자는 부풀려지고 기억은 억눌려지면, 공포스러운 상황이 찾아온다.

- p.714


 과거 발생한 학살들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거 학살을 현재의 정치적 명분으로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학살당한 기록을 봐라,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복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정치적 정당화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청산이 올바르게 되지 않으면 이는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학살을 학살로 되갚아야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끝없는 복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복수라는 명분은 지도자가 제시하기에는 아주 쉬운 방법이겠지만, 그러한 복수에 휘말리는 것은 오로지 개인들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정치적 명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겠죠.




 특히 이 책에서 죽기 직전의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때론 이데올로기 때문에, 때론 복수와 보복으로,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도망가는 사람,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부류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2. 왜 1400만 명의 삶이 사라져야 했는가

 

이 책에서 학살의 기록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첫째는 소련에서 스탈린주의와 나치 독일에서 국가 사회주의가 세력을 굳히던 시기 (1933~1938), 둘째는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 시기(1939~1941), 셋째는 독소전쟁의 시기 (1941~1945) 죠. 첫째 시기엔 소련 내 우크라이나에서 학살과 정치적 숙청이, 둘째 시기는 나치 독일과 소련 모두가 동부 유럽에서 학살이, 셋째 시기는 나치 독일 내부에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원래의 유토피아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명되었을 때, 대량학살 정책을 '실질적인 승리'로 대신 내세웠다.

- p.683
© juvnsky, 출처 Unsplash

 저자는 소련과 나치 독일에서 일어난 학살들의 근본적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바로 유토피아가 비전으로 제시되고, 현실과 타협되고, 대량학살이 발생했다는 점이죠. 비록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지라도, 소련과 나치 독일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대영제국의 그림자는 또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를 인위적으로 지탱하고 있다고 믿은 스탈린의 전임자 레닌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레닌의 후계자로서, 스탈린의 과업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여전히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세계로부터 사회주의의 고향 소련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 p.280


 자세히 살펴보면, 소련에서 스탈린이 제시한 유토피아는 스탈린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소련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통해 소련을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 소련은 러시아의 전근대적인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국가였죠. 그러기에 절대적인 지도자였던 레닌이 죽고 난 이후에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 스탈린으로서는, 이제 막 탄생한 소련과 마르크스주의로도 서유럽처럼 산업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집단화가 우크라이나에서 저항과 굶주림을 불러오자, 스탈린은 부농,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 p.683


 이러한 스탈린주의의 실현은 소련 내부의 우크라이나에서 시도됩니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상처럼 산업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고, 수많은 실패로 인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탈린은 부르주아로 여겨진 부농,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들의 방해가 실패의 원인이라 지목함과 동시에 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죠.




© karsten116, 출처 Unsplash
독일군이 모스크바에서 차단되고,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히틀러는 유대인에게 책임을 물었다.

 - p.683


 반면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제시한 유토피아는 순수한 게르만족만이 존재하는 유럽 세계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우생론을 기반으로 한 게르만 우월주의를 이데올로기로 갖고 있었기에, 열등한 (나치 독일의 입장에서) 동유럽과 소련의 다른 민족들은 모두 없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역시 그들의 이상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러한 실패의 원인으로 유대인을 지목합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 있는 유대인들의 보이지 않는 조직이 제국 내부에서 실패를 유도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스탈린과 히틀러 모두 원래의 유토피아, 목표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을 때, 실질적인 승리,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대량 학살을 자행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학살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실패로 일어난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존재를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치 독일이 유럽에서 벌인 학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련 내부에서의 학살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아무래도 소련은 당시 자국 내부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에서의 학살이었다면, 나치 독일은 전쟁을 통해 점령한 타국 – 폴란드, 프랑스, 소련 서쪽 등 –에서의 학살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겠죠. 역설적이게도 소련은 전쟁 중이지 않을 때 가장 학살이 심했던 반면, 독일은 전쟁 중일 때 학살이 심했는데도 말이죠.




3. 그러한 학살의 기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따라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둘 다 특정 형태의 폭군 정치를 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두고 적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는 자신들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또는 바람직하다고 입증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 p.683


 다시는 이러한 학살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점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소련과 나치 독일이 일으킨 학살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만 할까요. 단순히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히틀러가 희대의 미치광이이자 살인마여서 그랬다고 넘어가야 할까요. 


 그러나 수많은 사례들을 읽다 보면 오히려 지도자보다 밑에서 실무를 담당한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학살에 가담하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이데올로기를 제시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무엇보다도 실제로 학살에 참여한 사람은 당시 나치 독일과 소련 사람들이었고, 그들 또한 지도자의 이데올로기를 따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과거를 보며 왜 그러한 비인간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비난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시 유럽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증오가 넘쳐나는 시기에서 자기 혼자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쉬운 일이었을까요. 다음은 내가 죽을 수 있는 시기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넘어가야만 했을까요. 무엇보다도 살아남는 게 중요한 가치여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 geralt, 출처 Pixabay

 소련과 나치 독일은 전체주의가 극단으로 향했을 때, 그리고 지도자가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래도 소련은 마르크스라는 이데올로기적 근거로부터 발생했다면, 나치 독일의 국가 전체주의는 이념적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파시즘으로 그 근거를 보기도 하지만, 정작 파시즘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물이나 서적이 없기 때문이죠.


 또한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실패를 가리기 위해 타인을 탓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남 탓하는 것이 정말로 편한 일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적어도 지도자라면 그런 손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정치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반복되는 일이겠지만 말이죠.




4. 전쟁 기록들의 공통점




© jonnyclow, 출처 Unsplash

 제2차 세계대전은 전쟁, 그중에서도 총력전은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단순히 군인뿐만이 아니라, 민간인들마저 학살당하고, 또한 학살에 참가해야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로부터 전쟁이 왜 일어나면 안 되는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20세기에 한국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벌써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넘어가는 오늘날에는, 점차 전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경험했던 분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비록 비정상적 집단인 북한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할지라도 말이죠.


 전쟁을 실제로 겪지 못한 세대라면(물론 실제로 겪을 필요도 없겠지만),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아는 방법은 오로지 역사를 통하는 길 밖에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학적으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도 전쟁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죠.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국가에 속해 살아간다면 상호 간 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역사를 통해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이로부터 전쟁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지를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이러한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잊어버린다면 그런 희망 역시 사라지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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