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얼룩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법
마트에 갔다가 사람의 두배쯤 되는 크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올해가 끝나간다고? 아니. 왜?" 1년을 도둑맞았다. 매년 이맘쯤 크리스마스를 발견하면 '예쁘다. 벌써 크리스마스구나'라는 설렘을 가지며 연말 분위기에 취해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며 말한다. "멍하니 거기서 뭐해. 올해 끝났거든?"
힘들었던 기억들이 미화되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시기. 年末. 매년 이쯤 다음 해의 다이어리를 고르며 미래를 계획했었다. 그 해 다이어리를 끝까지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5월쯤부터 백지로 남았더라도 새로운 다이어리를 물색하는 재미는 놓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길고 뻔한 1월 대신, 12월부터 다이어리를 쓰며 연말 모임들과 크리스마스로 한해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년엔 더 너그러워지길, 사랑이 가득하길, 시련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되 자신을 소중히 다루길 바라면서 만년 다이어리의 날짜를 꾹꾹 눌러써왔다.
올해는 달랐다. 다이어리를 사긴 커녕 사야 된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딱히 이룬 것도 없고, 다가올 내년이 기대되지도 않았다. 야심 차게 계획한 베트남으로의 쌀국수 여행과 에그타르트에 빠져 즉흥적으로 계획하던 포르투갈 여행은 무기한 연장되었다. 4년 차 직장인으로서 기량을 펼쳐보겠다던 다짐도 줄어드는 업무 덕에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대신 매일 들려오는 확진자 소식,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재난문자,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 해를 메꿨다. 그 불안감은 내 안에도 싹을 틔웠다. 어느 순간 회사의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작은 부품이 된 듯했고, 바득바득 살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평온한 세상에 배신감을 받았다. 늘어난 집콕 생활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가지로 뻗기에 충분했다.
생각의 꼬리가 방안 가득 부풀어 터지기 직전 즈음, 같은 회사를 다니는 친한 언니를 만났다. 언니의 출산 전 맛있는 거 많이 먹어두자는 명목이었는데, 어느 순간 회사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말이 술술 나왔다. 있었던 일들과 그 과정 속에서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말하고 있는 자신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언니의 한마디에 나의 나약함이 원인이라는 자책에서 해방됐다. 굴레에서 벗어나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는 듯했다. 미래에 대한 해답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관계 속에서 얻어지기도 한다. 상대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기 않아도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에서 나온다. 계속 출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시간을 보냈더라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더 빨리 알아차렸지 않았을까? 집으로 가는 길이 한결 편안했다.
세상은 멈췄지만 시간은 성실하게 흐른다. "밥 한 번 먹자."라는 안부인사 대신 "코로나 조심해."라는 말을 건네면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올 한 해는 거지 같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느라 사람 간의 관계까지 거리 두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시간이 되었다. 새해인사를 빌미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어보자. 다들 안녕하시냐고. 분명 당신과 같은 한 해를 버텨낸 또 다른 우리를 위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