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날을 기억하며

5월의 사람들

by 이제이

오월은 참 다정한 달이다.
꽃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계절을 넓히고, 사람들은 잠시 한숨 돌리며 자신을 돌아볼 틈을 갖는다. 그런 오월의 풍경 안에도 세상은 조용히 흔들린다. 어떤 이는 웃고, 또 어떤 이는 운다. 그 안에는 각자의 시간과 마음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삶의 결 위에 살아간다.

5월 초, 청년 취업난 속에서도 꿋꿋이 준비하던 한 공시생이 결국 합격 소식을 전했다. 세상의 경쟁이란 마치 끝없는 레이스 같지만, 혜진 씨는 늘 “나는 내가 이기는 게임을 한다”라고 말했다. 남과 비교하기보단,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을 쌓아 올리는 방식. 합격 후에도 그녀는 조용히 엄마 손을 잡고 집 근처 꽃시장에 갔다. “합격 축하선물로 내가 꽃 한 다발 사줄게.” 그 말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너라는 꽃이 피었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니.”

그 주말, 서울 변두리의 한 오래된 초등학교에서는 작은 동네 축제가 열렸다.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열린 축제였다.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7살 유진이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긴장한 탓에 가사 한 줄이 헷갈리자, 울먹이는 유진이의 손을 잡아준 이는 다른 반 친구의 할머니였다. “괜찮아, 사람들은 너 노래 말고 네 웃음을 듣고 싶어 하니까.”
그날 이후 유진이는 매일 아침, 노래보다 먼저 웃는다. 아이의 삶은 그렇게, 어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물들어간다.

서울 외곽의 한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중년 부부는 요즘 전세사기 피해로 매일 법원과 구청을 오간다. 남편 정호 씨는 20년 넘게 건축현장에서 일했다. 퇴직금을 모아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했지만, 그 집은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깡통전세'였다. “집 한 채 마련하려다 인생을 잃을 뻔했죠.”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 단톡방을 만들고, 법률 상담과 언론 대응을 조율하는 일을 도맡았다.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싸우고, 누군가는 그 절망 속에 다리를 놓는다. 그는 후자였다. 삶이란 결국, '내가 버틸 수 있는 무게를 나누는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날, 서울 북쪽의 한 작은 카페에서는 파티시에를 꿈꾸는 60대 여성이 조심스럽게 첫 수업을 시작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삶의 방향을 잃었던 윤정 씨는 어느 날 TV에서 본 ‘고령 창업 도전기’를 보고 결심했다. “사람이 나이 들었다고 마음까지 말라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는 작은 케이크 위에 정성스레 생크림을 올리며 말했다. “나는 지금 내 생을 다시 굽고 있어요. 달콤하게.” 그 말이 어쩐지 오월의 햇살과 잘 어울렸다.

5월 18일, 광주에서는 올해도 묵직한 침묵의 꽃들이 피었다. 1980년의 봄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섰고, 그날의 진실과 책임을 외쳤다. 그 곁에는 이제 그들의 자식들과 손자들이 함께 있었다. 한 고등학생은 시 낭송을 했다.
“그날의 피가 오늘의 숨이 되어, 나는 자유를 배웁니다.”
그 한 구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현재를 지탱하는 숨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잠실 근처 한 도서관 앞 벤치에서 30년 만에 서로를 다시 만난 두 친구를 보았다. 대학 시절을 함께 했던 정은과 민아는,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비슷한 외로움과 바쁨 속에서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마주 앉았다. “우리 옛날에는 참 철없이 웃었는데, 그게 참 그립더라.”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그날의 대화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서로가 걸어온 시간을 위로하듯 말이다.
“사실, 인생은 그렇게 별일 없는 오월 같은 거 아닐까.” 정은이 웃으며 말했다.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그 오월 속에도 우린 계속 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오월을 살아냈다. 누군가는 자리를 잃고도 다시 일어섰고,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주 작고 조용한 방식으로 삶을 다시 시작했다.
오월은 다정하고, 그 다정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흩어질 듯 이어지는 이 이야기들이, 다음 계절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