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잔치

종활(シュウカツ - 슈키츠)

by 이제이

3개월 시한부, 웃으며 작별한 남자의 마지막 잔치


“이장님, 정말 하실 겁니까?”
장의사 복장을 한 사회자가 주춤거렸다.

“그럼. 살아있을 때 장례식 한 번쯤은 열어봐야지.
죽고 나면 내가 참석도 못하잖아.”

그렇게 82세 고병수 씨의 **‘생전 장례식’**은
햇살 좋은 봄날, 양평의 한 연회장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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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은 검정 천 대신 분홍 풍선으로 꾸며졌고,
입구에는 이런 팻말이 서 있었다.

> “죽기 전에 한 번 웃고 가렵니다. 고인의 파티에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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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울며 달려왔다.

“아빠, 아직 안 죽었잖아!”

“그러니까 지금 오라고 한 거지.
네가 진짜 장례식 땐 울기만 하잖아.
지금은 나랑 마카롱도 먹고, 사진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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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 여러분, 고병수 씨의 생전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고인께선 살아 계시고, 식사도 하실 예정입니다.”

사회자가 그렇게 외치자,
하객들이 웅성거렸다.

“와, 살아있는 장례식은 처음이다.”
“저게 요즘 유행이라는 그거야? 종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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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올 때까지 나도 고민 많이 했어.
근데 말이야,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결국 나한테 남은 걸
누구한테 어떻게 건네줄까 고민하는 거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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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석 한쪽에 앉은 87세 친구 영수가 크게 외쳤다.

“야, 병수야! 죽기 전에 내 돈이나 갚고 죽어!”

“이 양반, 죽는 놈한테 돈 받으려는 놈은 처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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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시간보다 줄 돈 걱정하는 건,
역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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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순서는 **‘유언 퀴즈쇼’**였다.
병수 씨가 자신의 유언장을 퀴즈로 풀어
정답자에게 물건을 주는 방식.

“첫 번째 문제!
내가 처음으로 여자한테 받은 선물은?”

“군용 양말!”
“아니다, 입냄새 나는 향수!”

“정답! 초콜릿 두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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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콜릿은
첫사랑 영자 씨가 보내준 것이었고,
무대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말했다.

“나 그거, 원래 내 남편 줄 거였어. 근데 병수가 배가 고프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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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초콜릿 두 개 중 하나를
‘말없이’ 줄 수 있는 용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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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중간, 영상이 상영됐다.
자막: “고병수 82년 인생, 하이라이트. zip”

군대 시절 사고로 삭발한 모습,
아이 낳고 기저귀 처음 갈던 날,
교회 장로 뽑히고 술 끊겠다고 선언한 날. (그리고 그날 밤 몰래 마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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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영상,
검진실에서 의사가 말했다.

“3개월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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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꺼지고, 병수 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사실, 저 얘기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났어.
근데 집에 와서 혼자 라면 끓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라면, 몇 개 더 사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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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웃었다.
몇몇은 울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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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남은 라면 수를 계산하는 일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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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다시 일어났다.

“아빠, 진짜 이대로 가면 우리 너무 슬퍼.
그냥 입원만 하고, 항암 치료 다시 하면 안 돼?”

그는 조용히 딸의 손을 잡았다.

“아가, 난 82년을 열심히 살았어.
이제 좀, 나 없이도 잘 사는 너를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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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은 슬픔이 없어.
남는 사람들이 다 가져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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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마지막으로 뭐 하고 싶어요?”

사회자가 묻자 병수 씨는 멈칫했다.

“… 키스?”
“와 아아아아악—!”

“농담이지.
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밥 한 끼 더 같이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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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과
말없이 숟가락 부딪치면서,
국물 한 입 더 먹는 그 순간.
그게 진짜 삶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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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대단한 게 아니라,
국물 한 모금 더 먹고 싶은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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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하객들도 하나둘 돌아가고,
병수 씨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오늘 재밌었어.
살면서 제일 웃은 날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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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씨가 다가왔다.
그의 옆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그럼, 오늘이 생일이야?”

“아니.
내가 죽음을 이긴 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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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별이 떴다.

그의 사진 옆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나는 떠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의 맨 마지막 문장을
직접 찍고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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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령화 사회’와 ‘초고령 사회’는 단순한 통계의 구분을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묻는 시대의 질문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 부른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5년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이미 초고령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종활(シュウカツ, 슈카츠)’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종활(슈카츠)’은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뜻하며,
장례식, 유산 정리, 인간관계, 마음의 정리까지
스스로 삶의 마무리를 기획하는 태도다.

종활(슈카츠)이 일본에서 유행하게 된 이유는
단지 오래 사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립된 죽음, 남겨진 이들의 짐,
그리고 자기 다운 마지막을 원하는 욕망이 겹쳐지며
삶의 마지막 장면마저 스스로 연출하고 싶은 흐름이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문장이 슬픔이 아니라 유쾌함으로,
이별이 아니라 인사로 쓰일 수 있다면
그 삶은 더 깊이 기억될지 모른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의 종활(슈카츠)은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그 마지막 장면을 함께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더 단단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요.